"한국연극생태계 때문에 '기생충', '오징어 게임'이라는 세계적인 한국 콘텐츠가 나올 수 있었습니다." "창작자가 중심이 되는 서울문화재단으로 활성화할 겁니다."
그가 대표이사가 되고 나서 나눈 전화 통화에서 들은 첫마디였다. 서울시 문화수석에서 서울문화재단으로 돌아온 송형종 대표를 알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쯤이었다. 그 당시 송 대표는 연극 연출을 하면서 『배우 길들이기』(1995)라는 책을 발간한 후였고, 나는 『맹꽁이 아저씨와 훔쳐보는 연기나라』라는 아동·청소년 연기 책을 출판한 후라 그와 한두 차례 통화했다.
그 뒤 송 대표는 박장렬, 양정웅, 이해제 등과 혜화동1번지 3기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진보적인 연극들을 선보였고, 1998년 3월 극단 가변(可變)을 창단하면서 폭넓은 작품들을 연출해 왔다. '시대를 두려워하지 말고 시대의 변화를 연극으로 담아내자.'라는 취지로 극단 명을 정했다. 비상한 그의 재주는 스스로를 연극 연출에만 머물게 하지 않았다. 그는 스무 살 때 좌판을 깔고 남대문 시장에서 옷 장사를 하며 달변가 체질을 익혔다. 대학교 학생회장을 거치면서는 전투력도 생겼다. 보스기질과 행정 감각이 있는 송형종은 연극 행정가에 어울렸고, 제3대 서울연극협회 부회장을 거쳐 제5대에서는 서울연극협회장을 맡으면서 문화 행정가가 되어 있었다.
대학교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거쳐 항일여성독립기념사업회 대표이사를 할 시점에, '한국연극의 승부사들' 인터뷰를 할 때였다. 그에게서 정치인의 감각이 느껴졌지만, 송형종은 "웬 정치인이냐. 그런 말은 하지 마라"며 웃었다. 이후 그는 서울시 문화수석이 되어 있었다. 문화수석이 되고 나서 오세훈 서울시장을 의식해서인지 극도로 겸손함을 보였다. 노점상에서 인생의 한 수를 배운 그는 탁월한 정무 감각과 문화행정가 체질로 서울의 문화 지형도를 두수 정도 내다봤다.
그가 머지않아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될 거라는 걸 직감했는데, 지난 1월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되어 돌아왔다. 인터뷰 장소는 개관을 앞둔 서울연극창작센터로 정했다. 겨울 코트에 서류 가방을 들고 온 그와 극장으로 올라갔고, 2층 객석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터뷰는 사전질문을 공유하지 않은 채로, 마치 공연 30분 전 객석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진행됐다.
▶ 문화수석에서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돌아오셨군요.
"발령받은 지 한 40일 정도 됐어요. 생각보다 해야 할 일이 많더라고요. 제가 걸어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개인 극단 대표를 하다가 한국연극협회 이사, 서울연극협회 회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거쳐 서울시 문화수석 자리까지 맡았어요. 개인에서 연극계를 대변하는 단체로 갔다가, 지금은 공공과 시민을 위해 일하는 거죠. 예술가가 행복하고, 그들의 창작이 문화가 되고, 그 문화를 시민이 누리고, 그래서 서울시를 세계인들이 오고 싶어 하는 도시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제 역할이에요."
▶대표가 되고서 "창작자가 중심이 되는 재단으로 활성화하겠다"라고 하셨지요.
"서울문화재단 직원들과 전임 대표께서 예술 행정에는 '가' 등급을 받을 만큼 잘해주셨어요. 저는 조금 더 헌신해서 예술가를 위한 도시를 만들고 싶어요.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립미술관이나 서울시립교향악단 같은 기관들과는 존재 목적이 달라요. 서울 시민을 비롯한 세계인들에게 매력적인 콘텐츠를 보여주는 게 다른 기관들의 목적이라면, 서울문화재단의 미션은 창작 생태계와 기반을 얼마만큼 잘 만들어내느냐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서울문화재단은 철도의 레일 같은 거죠. 문화라는 다양한 기차가 나아갈 수 있도록 레일을 잘 깔아주는 게 서울문화재단의 역할입니다. 오세훈 시장이 서울을 글로벌 TOP 5 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서울문화재단은 국제 교류 기금 같은 시스템을 빠르게 보완하고 있어요. 또 서울문화재단이 순수예술에 200억가량의 지원금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을 집중적으로 발아시키기 위해 가을에 열 순수예술축제를 고민하고 설계하는 중입니다."
▶ 예술가를 위한 도시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기획은?
"코로나 19 이후로 예술 생태계가 상당히 망가졌어요. 서로 거리 두기를 한만큼 어쩌면 예술가들도 본질적인 예술 정신과 거리를 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들이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 해요. 서울시 안에 많은 기반 시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있는 서울연극창작센터나 신당창작아케이드, 연희문학창작촌,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강북'같이 예술가들의 성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죠.
대학로극장 쿼드 같은 경우는 개관 이후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어요. 혹자들은 쿼드에서 훌륭한 콘텐츠를 생산해 극장을 돌려야 한다는 말도 하는데, 이러한 기반 시설들은 예술가들의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어요. 예술가가 행복하지 않으면 어떻게 좋은 작품이 나오겠어요? 이런 기반 시설들을 토대로 예술가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들을 끌어올려야죠."

▶ 예술가들이 역량을 발휘하려면 지원체계가 중요하죠.
"서울문화재단 올해 예산이 1,600억 가까이 됩니다. 그 안에는 콘텐츠 중심의 직접 지원이 있고, 또 기반 시설에 투자되는 간접적인 부분들도 있습니다. 서울시로부터 수탁 운영 중인 900억가량의 공간들도 많이 탄생했습니다. 서울청년문화패스 같은 것도 서울문화재단이 관리하고 많은 청년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올해 임기를 시작하면서 방점을 찍은 부분은 '예술가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간 여러 면에서 갈등과 분열이 있었는데, 그걸 넘어서는 데에 역점을 둘 겁니다. 심사위원 제도를 보완하는 등 문화예술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고요."
▶ 재단의 역할을 기대하는 연극계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심의제도의 균형성과 투명성을 좀 더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는데.
"공공 지원제도는 무엇보다 공정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심의위원의 권력화 방지인데, 이를 위해 전문성과 윤리의식을 갖춘 다층적 심의위원을 새롭게 발굴해 풀을 넓히는 것을 우선하여 고려하고 있지요."
▶ 지원 체계도 중요하지만,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평가 체계도 중요하죠.
"간부 회의에서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했어요. 지원금을 받은 사람이 승리자가 아니다. 선정 예술가들은 공공 재원으로 창작활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아야 하고, 작품 활동을 통해 시민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주도록 '예술가로서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재단은 선정 이후에 작품 발전을 위한 전수 평가로 예술가에게 다양한 관점의 피드백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이는 차년도 지원사업을 비롯해 서울예술상 선정 등 예술지원의 기초자료로 환류되기도 합니다."
▶취임하자마자 세게 얘기하셨군요. 예술경영지원센터라든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공연을 모니터링하고 비평 기준을 세워 정량평가 함으로써, 예술가를 성장시키는 시스템으로 변화된 운영을 하고 있지요. 지원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을 좀 더 견고하게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정책이라고 보는데… 서울문화재단은 메타비평 제도를 도입한다고요.
"이미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등 여러 평론가 집단이 있지만, 내년부터는 메타비평 제도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평론가, 예술가 등의 여러 심사위원이 공연을 보고 그 작품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다양한 평가를 하는 거죠. 또 그 평이 공유되고 정량화되어 다음해에 데이터로 쓰일 수 있게끔 선순환 구조를 이룩하려고 하는데요.
서울문화재단이 지금 상당한 예산을 들여 문화 정보 포털을 만들고 있고, 6월에 공개가 될 겁니다. 올해 선정작 1,200건 중 700건 정도가 공연 작품이에요. 예를 들어 <햄릿>이라는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문화 정보 포털에 포스터와 정보가 올라가고, 비평이 같이 뜨게끔 하는 거죠."
"그렇게 되면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어떤 작품이 좋은지를 알고, 한마디로 문화 쇼핑을 할 수가 있겠죠. 포털에 작품들이 올라오면 2단계로 그중에서 서울예술상 수상작을 뽑습니다. 뽑힌 작품들은 또 별도의 개발을 거치게 돼요.
이미 작년 재작년에 걸쳐 진행된 제1, 2회 서울예술상 수상작 중 3개 작품이 문체부 투어링 케이-아츠와 재외한국문화원과의 연계로 '유럽과 미주'해외 투어가 확정되기도 했습니다. 혹자들은'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자.'라고 하는데, 그 소리는 한물간 유행가 같아요. 서울문화재단의 예술가 지원체계가 상당 부분 성장형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화정책도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겁니다."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대학로극장 쿼드의 극장 운영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작품도 저마다 색깔이 있는 것처럼 극장도 태어날 때부터 저마다 성격이 다른 거죠. 쿼드에서 생산되는 콘텐츠들을 아르코예술극장이나 국립극장 같은 프로시니엄 아치 극장의 것들과 비교하면 안 돼요. 그런데 그간 쿼드 안에서 일반적인 연극도 많이 했지요. 코로나19 등의 원인이 작용한 듯해요."
"대학로 극장 문화와의 차별성은 좋은데… 극장이 다른 제작극장들과 특화되어 있다고 느낄 수 없더군요. 창작자들이 쿼드에 진입하기 굉장히 까다롭고, 공연된 작품 중에 쿼드스러운 작품을 발견하기에는 어려웠어요."
"쿼드에서는 정말 세 발 앞서가는 작품이 나와야 해요. 6단계로 변신할 수 있는 최고의 극장임에도, 과연 그렇게까지 변신을 꾀하는 작품이 있었는가. 거기에 대해서는 저희도 반성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얼마만큼 연극성과 실험성을 담보한 작품을 공연할 것인가.'를 대관 기준으로 삼으려고 해요. 그러한 극장의 색깔을 입히는 게 제 미션입니다.
6단 변신을 하려면 실험해야 할 게 많지 않습니까? 기술적으로 요구되는 것도 많고요. 예를 들어 3~4일 셋업하고 실험을 충분히 한 다음에 공연은 이틀을 해도 괜찮다는 거죠. 그리고 쿼드 공연의 성공은 관객 수로 평가받을 수 없어요. 여기 서울연극창작센터 블랙박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의미 있는 실험을 했느냐로 작품을 평가해야 합니다. 앞으로 쿼드는 대관중심의 극장으로 전환할까 생각 중입니다."
▶3월20일에 개관하는 서울연극창작센터에 어떤 기대를 걸 수 있을지.
"극장과 연습실이 각각 두 개씩 있어요. 또 연극인들이 모여서 일할 수 있는 오피스가 12개 정도 있고, 거기에 서울연극협회나 한국연극연출가협회 등 여러 단체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들어와 있습니다. 차차 더 많은 협단체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할 거고요.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리스테이지 서울'(Re:Stage Seoul)도 6층에 있습니다.
'리스테이지 서울'은 공연 물품 대여·위탁 플랫폼인데,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성격도 가집니다. 대도구 창고는 강북 수유동에 따로 있어요. 국립극장이 작년에 개관한 무대예술지원센터도 경기 파주에 있는데, 대학로 가까이에 이런 곳이 생겨서 연극인들이 굉장히 좋아해요. 서울연극창작센터는 연극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쿼드랑은 또 다른 형태의 성장형 공간입니다."
▶청년 예술가들이 놀 수 있는 극장이 없다고들 합니다. 삼일로창고극장처럼 서울연극창작센터가 청년 예술가를 위한 거점 공간이 된다면요.
"블랙박스 같은 경우는 청년 예술가들이 자기만의 언어를 실험해 볼 수 있는 놀이터에요. 객석도 다 접을 수 있고, 극장 바깥에 있는 계단이나 야외도 활용할 수 있어요. 사실 여기는 어떻게 보면 대학로의 백스테이지 개념이죠. 서울연극센터와 서울연극창작센터,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강북 등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청년 예술가들이 그곳에서 창작 실험을 통해 발전시킨 콘텐츠를 가지고 대학로로 진입할 수 있도록 루트를 만들어 주고 싶어요."
▶ 연극계에서는 재단이 현장과 밀접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내보이고 있어요.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서 전체적인 예술 생태계를 봐야지, 꼭 연극계만 바라보고 갈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30년 이상 연극 관련 일을 해왔기 때문에 연극에 대한 애정이 크죠. 여태까지 좀 더 좋은 연극 환경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느낍니다.
세상은 딥시크나 AI 등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이 속에서 우리 연극은 얼마만큼 새로운 질문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연극이 가장 앞서가고 진두지휘를 해야 할 텐데, 어쨌든 연극인들이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면 뒤에서 돕겠습니다. 예술계 대표자들과 우리 직원들이 수평적인 위치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정책적으로 변화시키고 싶은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예술가 도시 파리'처럼 '예술가 도시 서울'이라고 딱 명명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또 10년 후를 바라보고 볍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문화를 육성하고 싶습니다. 몇 발짝 앞서나가는 예술가들의 감각이 보편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10년 후를 바라보고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풍토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해요. 예술가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의심받지 않는 제작 환경이 이뤄지면 좋겠어요."

(인터뷰 공간을 블랙박스 바깥 복도로 옮겼다. 복도 벽면에 서울연극창작센터 시어터 202 극장에서 시범 공연으로 올려진 극단 베다의 <세상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쾅 소리 한번 없이 흐느낌으로> 포스터가 보였다.
유리창으로 성북동 주택가가 선명하게 들어왔고, 도로변 앞에는 하땅세 극장이 보였다. 개관식을 준비하는 팀원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울문화재단 이야기에서 서울시 문화수석 시절과 연극인 송형종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갔다.)
▶서울시 문화수석 시절을 돌아보면 어떤가.
"연극계를 거쳐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들어가 다양한 장르에 대한 지원 사업을 경험했어요. 정책과 문화예술이 어떻게 함께 가야 하는지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많이 배웠다면, 서울시에서는 문화라는 단어를 좀 더 넓은 의미로 생각하게 됐어요. 서울시 1년 예산이 한 50조 2천억 원 정도 되거든요.
그중 30조 가까이 넓은 의미의 문화와 연결되어 있어요. 세종문화회관이라든지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문화재단, 박물관을 다루는 부서뿐만 아니라, 디자인정책과나 체육관광국 등도 있어요. 더 좋은 야외 문화를 만들기 위한 기구나 고립 은둔 청년 지원사업까지,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는 큰 단위의 문화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문화 체감온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한 번은 회의 시간에 시장님이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서울에 공장을 지을 건가? 서울에 문화밖에 더 있나?" 그 얘기가 와 닿았습니다. 서울은 창조 산업으로 먹고살아야 하는 도시거든요. 시장님은 대중예술이나 응용 예술도 중요하지만, 순수예술, 기초 예술이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인터뷰할 때도 대학로에 관한 말씀을 많이 하세요. 대학로의 생태계와 연극배우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기생충'이며 '오징어 게임'이라는 세계적인 한국 콘텐츠가 나올 수 있었다고요.
그리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촘촘히 미래의 문화를 준비하는 중장기적인 고민을 깊게 하시는 편이에요. 그런 고민이 인프라 구축이라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요. 좋은 콘텐츠 하나가, 좋은 건축물 하나가 도시의 문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거고, 또 그 문화가 시민들에게 복지가 되는 거거든요. 그만큼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시고 시민들에게 피부에 와 닿는 정책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도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그만큼 오세훈 시장님은 '서울특별시 문화시장님'이라고 할까요.

▶연극만 떼어놓고 봤을 때 어떤 변화가 필요해 보입니까?
어느 장르든 마찬가지겠지만, 연극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밝아야겠죠. 정책입안자와 연극인들 사이의 매개체 역할도 해줘야 해요. 연극 생태계 전반에서 각 구성원마다 추구하는 것들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안이 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정책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주체들에게 제안하고 협치를 통해 관철해가는 과정을 계속 거쳐야 한다고 봅니다.
▶40여 년 동안 연극인으로 다양한 연출과 기획, 연극 행정을 해왔지요. 연극인 송형종과 문화정책자 송형종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지.
"저는 지금도 자나깨나 연극 대사를 곱씹어 봐요. 그 안에 답이 다 있거든요. 우리 때는 연극인이나 예술가라는 말이 되게 고급스럽게 느껴졌잖아요. 연극인으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그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든지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서울시에서 3·1절이나 광복절 행사를 연출할 때도 눈빛이 살아있다는 얘기를 들어요. 체질은 안 바뀌는 거죠. 옛날보단 지금이 더 연출적으로 깊어진 것 같아요.
명작에는 대사의 무게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걸 이기고 무대화하는 방법을 다시 도전해 보고 싶어요. 또 저희 세대가 해야 할 일은 후배들을 키우는 거예요. 그동안 혜화동1번지부터 시작해서 '100만원 연극공동체','소극장 공유 연출가전' 등을 통해 후배들과 함께 길을 만들어왔어요. 단순히 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런 생태계를 만드는 데에 더 역할을 다하고 싶어요."
▶연극 연출가 송형종은 어떤 시절이 뜨거웠나.
"한 서른일곱 여덟 살까진 체호프 『갈매기』의 뜨레쁠레프처럼 철저하게 반항심으로 살았어요. 젊은 날,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연출을 시작했는데요. 그 시절엔 새로움이 없다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막 격분해서 말도 안 되는 연극을 하고 살았죠.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쏘린의 영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뜨레플레프의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다음엔 양보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곤 '함께'라는 말이 저한테 중요해졌어요. 특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을 거치면서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부끄러움을 갖게 됐습니다."
▶문화정책자로 돌아와 한국 연극을 바라볼 때, 성장성의 체감온도는?
"최근 여러 원로 선생님이 돌아가셨고, 안 좋은 일들로 연극계가 많이 침체했죠.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극 정신 같은 게 있었어요. 나는 적어도 공연을 올리기 전에 70일 이상은 연습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것도 안 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한국 연극계에 스타일리시한 새로운 것들이 나오려면 김치가 익어가는 기간처럼 작품이 익어가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딱히 그런 싹이 보이지 않아요. 만약 어떤 작품을 해외에 추천할 거냐 했을 때 단연코 딱 떠오르는 작품이 없어요. 서울문화재단 대표로서는 연극계에 앞으로 서울다움을 장착한 콘텐츠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송형종의 꿈이 정치인이라고들 하던데.
"제가요?(웃음) 서울시 문화수석으로 있었을 때 사람들이 저를 정치인이라고 부르던데, 진심으로 제가 그렇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보다는 문화예술계에서 매개체가 됐든 어떤 역할로서든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서울시 문화수석도 그렇고, 또 이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라는 자리도 얼마나 엄중한지 잘 알고 있어요. 평소 제 신조이기도 한데,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오세훈 시장을 지지하는 이유는 그분과 의기투합하면 서울의 문화예술이 더 좋아지는 데 일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 송형종에게 어떤 역할을 기대하면 좋겠습니까?
"모든 예술에선 관객이 중요하듯 시민들에게 일상 속에서 예술로 가슴 뛰는 설렘을 주고 싶습니다. 예술가들에게는 창의력이 자유롭게 폭발하여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예술가를 위한 도시를 만들어주고 싶고요. 임기 3년 동안 꼼꼼히 설계를 해서 제가 떠난 이후에도 정교한 기반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듣고 싶어요. 그러려면 시민 제안도 필요하고, 현장 예술가와 우리 직원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야 해요. 예술계 대표자들부터 시작해서 예술가들은 최소 3~40퍼센트는 행정가적 기질을 지녀야 하고, 반대로 우리 직원들한테도 제가 부탁한 건데 3~40퍼센트는 예술가적 기질을 가져야 해요. 더 좋은 예술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애쓰겠습니다.'서울다움'에 걸맞게 내부적으로는 관료주의를 타파하고, 현장중심의 전문성을 강화해서 세계 속 문화강국 메카 서울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는 여전히 달변가였고, 말의 속도가 빨라지면 더욱 그랬다. 질문의 핵심을 비켜간다 싶다가도 정확하게 의도를 살려냈다. 연출가적 기질도 살아있었고, 문화정책을 다루는 심연도 성숙해 보였다. 그를 아는 많은 연극인은 그가 정치적인 코스로 향하는 걸 보면서 정치인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정치인이 웬 말이냐."며 강력하게 부인했다. 400여 명의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을 인터뷰하면서 생긴 감각적인 습관이 있는데, 말의 무게에서 진심의 정도가 예측되는 것이다.
그는 서울문화재단 대표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대문 시장에서의 전투력을 가진 듯 보였고, 정치적인 생존 기질과 야망도 보였다. 예측이 맞는다면 서울문화재단 대표로서의 승부사적 기질도 보여야 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서울문화재단의 변화를 예술 현장이 체감하도록 지원 정책을 견고하게 만들 것이고, 이는 곧 서울 시민을 위한 문화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 부분에서 존재감을 각인 시킬 수 있는 승부사적 기질을 느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 자리가 그의 인생에서 마지막 게임이 될 것인지, 혹은 대한민국 전체의 문화를 그려낼 수 있을지는 그에게 주어진 임기 3년에 달렸다. 인터뷰를 마치고 시간이 지난 뒤 연극계 현장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서울연극센터, 연극 IN, 서울연극창작센터에 대해 한 번 더 물었다. 그는 한차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문자를 보내온 데 통화를 했다.
"혜화역 4번 출구에 있는'서울연극센터' 기능을 시민과 연극인들의 공간 중심으로 변화를 주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낭독공연과 소규모 공간 활용 공연들은 서울연극창작센터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연극인들이 개발하는 작품을 이 공간에서 기자회견과 작품발표를 할 수 있는 프레스 공간으로 변화를 주려고 합니다.
연습 후에는 간단한 샤워도 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 IN은 서울문화재단 통합정보시스템에 메타 심층 비평을 활용하고 다양한 정보들이 쌓이는 플랫폼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능으로 변화를 주기 때문에 그동안의 연극 IN 운영 방식과 차이가 없다면 통합 운영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결정을 못 하고 있어요. 조만간 숙제를 풀겁니다."
그는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공간, 극장, 연극센터와 웹진 성격의 연극 IN, 서울예술상은 사업에 따라 분명하고 차별화된 특성화를 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서울문화재단의 강한 변화의 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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