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강민구] 채찍을 잡은 선생님

입력 2025-03-04 19:59:25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

새해가 된 지 석 달째로 접어들었지만, 학교는 3월 1일부터 한 해가 시작된다. 고등교육법에서 3월 1일부터 다음 연도 2월 말일까지를 '학년도(學年度)'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교육은 대단히 중요하기에 그 공간인 학교(學校) 역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학(學)'은 본래 중국의 고대 왕조인 하(夏)·은(殷)·주(周)에 공통으로 존재했던 교육기관의 이름이고, '교(校)'는 하나라에 있었던 가장 오래된 교육기관의 이름이다. '교(校)' 자의 원래 의미는 '질곡(桎梏)'과 같이 죄수를 옭아매는 형구(刑具)이다. 그러므로 고대의 학교는 교육기관보다는 교정 기관에 가까웠던 것일 수도 있다.

순(舜)임금의 언행과 당시 정치 제도를 기록한 '서경(書經)'에 "관청에서는 채찍 형벌을 행하고, 학교에서는 회초리 처벌을 행한다(鞭作官刑, 扑作敎刑)"라는 말이 나온다. 이것을 본다면 고대 학교의 주요 교육 방법은 체벌(體罰)이었다. 명나라의 의약서 '본초몽전(本草蒙筌)'에 체벌 도구인 태(笞)와 장(杖)을 가시나무로 만드는 이유는 신체의 풍(風)을 몰아내기 위해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명나라 태조는 "옛날에는 가시나무 회초리를 사용하여 때리는 형벌을 집행하되, 그 효능으로 풍(風)을 제거하여, 비록 다치게는 해도 죽이지는 않으니, 옛사람의 마음 씀이 이같이 인후(仁厚)하였다"라고 국가의 공연한 폭력을 미화하였다. 이처럼 가시나무 회초리는 형별 도구이지만 치료나 교육의 목적이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과거에 학생 체벌 도구로 회초리를 사용하였다.

교직 생활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말로, '교편(敎鞭)을 잡다'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일면 고아(古雅)하게 들리지만, 와전되고 끔찍한 말이다. 채찍이나 회초리나 매한가지로 체벌 도구이지만 학교에서 교사가 채찍으로 학생을 갈긴 것은 아니다. '교편'은 앞서 말한 '서경'의 문장을 잘못 생략하고 조합해 만든 어휘로 짐작된다. 전근대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헌에 '교편(敎鞭)'이라는 어휘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근대 전환기에 잘못 만들어진 야만적 어휘인 듯하다.

아울러 '지도 편달(指導鞭撻)'이라는 말도 써서는 안 된다. 그냥 가르쳐 달라고 하면 될 일을 굳이 '채찍으로 때려 달라'고 할 것은 없다. 물론 겸사(謙辭)이지만, 폭력성이 도사린 말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폭력성이 용인되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살펴봐야 한다.

교원은 학생에게 어떠한 폭력도 가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학생을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교원의 책임이 교내에만 한정되지 않고 교외와 근무 시간 외(外)로 연장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보호자도 있기에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교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고 교직을 떠나지만, 여전히 교권 실추를 막을 의지는 없어 보인다. 그런데 최근 교사가 학교 내에서 어린 제자를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교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며, 교사는 예비 살인자일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요즘 추진되는 소위 '하늘이법'에 주기적으로 교사의 정신 건강을 검사하겠다는 안이 있는데, 교사의 88%가 반대하였다고 한다. 심지어 정신 질환을 앓는 교사가 휴직하거나 복직할 때 심의 절차를 거치도록 법제화하고 심의위원회에 학생이 참가하는 안이 추진된다고 하는데, 이 역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학생권과 교권은 대립적 권리가 아니다. 그 둘은 상호 존중을 토대로 인권(人權) 속에 공존하는 것이다.

강민구 경북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