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김도훈] APEC에 거는 또 다른 기대

입력 2025-02-27 14:58:15 수정 2025-02-27 18:01:56

김도훈 경북부 차장
김도훈 경북부 차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제1차 고위관리회의(SOM1)가 지난 24일 경북 경주에서 시작됐다. SOM은 APEC 정상회의에서 다룰 의제를 논의하는 회의다. 사실상 경주 APEC 정상회의의 막이 오른 셈이다.

다음 달 9일까지 2주 동안 무역투자위원회 등 24개 회의체를 중심으로 100여 차례 회의가 열린다. 이 기간 21개 회원국 대표단 등 2천여 명이 경주를 찾는다.

오는 10월 말 APEC 정상회의 주간엔 21개 회원국 정상과 정부 대표단, 기업인, 기자단 등 2만여 명이 경주를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행사 개최를 통한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하다. 경북으로 한정하면 1조원, 국가적으로는 1조9천억원의 파급효과가 예상된다. 대한민국의 도약과 문화관광도시 경주를 세계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문제는 '탄핵 정국'이다. 이 같은 상황은 경주 APEC 열기마저 앗아가고 있다. 정부는 물론, 국민적 관심도 떨어지고 있다. 개최 도시 경주에서조차 정상회의 개최 분위기가 좀처럼 뜨지 않고 있다고 우려한다. 개최 도시 경주로선 900억원대의 추가 국비 지원도 절실하다.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정상 외교도 마비된 상황이다. 당장 6월쯤 APEC 회원국 및 주변국 정상에게 발송할 초청장이 누구 명의로 보내질지도 안갯속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 20일 열린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경주 APEC 지원을 위한 국회 특위 구성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앞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특위 구성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국민의힘 측은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세계 정상이 모이는 정부 행사 지원특위를, 여당과 사전 논의 없이 야당 대표가 일방 통보하는 건 비상식적이란 게 이유였다. "이 대표가 벌써 대통령 행세를 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야당의 제안이라고 뒷짐 지지 않고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를 두고 김석기 국회의원은 "여야가 정국과 무관하게 경주 APEC만은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관세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일본과 인도는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등을 제시하며 발 빠른 협상에 나섰다. EU도 겉으론 미국의 조치에 반발하지만 물밑에선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한국은 탄핵 정국으로 국가 리더십이 부재한 가운데 트럼프발 통상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조차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부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일이 넘쳐난다. 다시 국정협의회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면 계엄 사태 이후 처음으로 정부·국회·여야 대표가 민생 위기 극복을 위해 머리를 맞댔지만, APEC 특위 구성에 합의한 걸 제외하면 별다른 성과 없이 빈손으로 끝났다. 여야는 추경 편성 필요성에는 큰 틀에서 원론적 공감대를 이뤘지만, 구체적 규모와 시기는 도출하지 못했다. 반도체특별법·연금 개혁 등 민생 과제를 둘러싼 이견 조율도 불발됐다.

국정 리더십 공백 속에 대내외 리스크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여야가 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기싸움만 벌이다간 '민생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APEC 특위 구성에 합의한 것처럼, 정부와 여야가 합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APEC 정상회의에 거는, 또 다른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