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수용] 텅 빈 콩나물시루

입력 2025-02-25 20:20:18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좁은 입구에서 밀고 밀리는 아우성이 마치 귀성열차의 개찰구(改札口)를 연상케 한다. 오후반인데도 아침부터 집에서 쫓겨 나온 아이들이 운동장을 차지해 가뜩이나 힘든 체육 시간을 망쳐 놓는다.' 46년 전인 1979년 봄 한 신문에 실린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2부제 풍경을 담은 기사인데, 점심시간 무렵 오전반과 오후반이 바뀔 때의 대혼란을 묘사하고 있다. 30년이 흘러 2010년 2월엔 이런 기사가 실렸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저출산 현상 심화로 올해 학령인구(學齡人口)가 1천만 명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학령인구가 1천만 명 아래로 내려간 것은 경제개발 시기인 1964년(992만5천 명) 이후 4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5년이 더 흘러 올해 2월에 나온 기사다. '올해 문 닫을 예정인 초·중·고교가 전국에 49곳이나 된다. 게다가 올해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이 열리지 않는 초등학교는 전국 170곳, 경북에만 무려 42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 국민학교 시절 한 반에서 키 순서로 번호를 매기면 맨 끝이 70번을 훌쩍 넘겼다. 도시에선 그런 반이 학년마다 10~20개나 됐다. 필자의 기억 속 국민학교 전교생은 4천500명 정도였는데, 대도시 학교에 비해 결코 많은 편이 아니었다. 넓디넓은 운동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던 아이들은 퇴직 무렵 중년이 됐고, 하루 종일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던 학교는 아파트에 자리를 내주거나 황량한 폐허로 변했다. 초등·중등·대학생 연령대인 만 6~21세의 학령인구는 1965년 처음 1천만 명을 넘기고 1980년 1천440만여 명까지 치솟았으나 2015년 800만 명대, 2018년 700만 명대, 2022년 600만 명대로 급격히 줄었다. 이런 추세라면 2040년엔 400만 명대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사라진 학교는 희망 없는 미래다. 국민연금 개혁안의 소득대체율(所得代替率) 1%포인트 차이를 두고 여야가 날 선 대립을 하는 근본 원인은 인구 감소다. 콩나물시루 교실에서 2부제 수업을 받던 아이는 국민연금을 받을 나이가 됐고, 해마다 수십 곳씩 학교가 문을 닫던 시절의 아이는 국민연금을 낼 나이가 됐다. 이런 인구구조에선 국민연금의 존속이 불가능하다. 저출산 심각 기사가 나온 지 40년이 흘렀는데, 국민연금은 산소호흡기를 달 지경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