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론새평-김종민] 부패 선관위에 면죄부 준 헌재

입력 2025-03-05 09:57:10 수정 2025-03-05 16:12:56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MK 파트너스)

헌법재판소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 아니다"고 결정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중앙선관위와 전국 17개 시·도 선거관리위원회의 최근 10년간 291차례 878건의 경력직 채용이 모두 규정을 위반해 이뤄진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확인됐다.

시·도 선관위를 감독해야 할 중앙선관위도 경력직 채용 과정에서 규정을 어겼고, '우리는 헌법기관이니 법령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하며 불법·편법 채용을 부추겨 온 것으로 드러났다. 간부 자녀와 친인척 특혜 채용이 잇따랐고, "선관위는 가족회사"라고 하면서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져도 "선거만 잘 치르면 된다"며 무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의 선관위 직무 감찰은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2019년 10월 실시한 감사원의 중앙선관위 기관 운영 감사 결과를 보면 '선관위 조직 및 정원 운영 부적정' '경력 경쟁 채용 서류전형 업무 부당 처리' '서류전형 시험위원 위촉 규정 미비' '공무 국외출장 업무 처리 부적정' '공무원 범죄사건 처리 기준 불합리' 등 15건이 지적됐다. 2016년 2월 기관 운영 감사에서도 '대체휴무제도 운영 부적정' '정원 초과 부당 승진 임용 및 채용' 등이 지적됐는데, 모두 인사를 포함한 직무 감찰 사안이다.

1994년 12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감사원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선관위를 직무 감찰 제외 대상에 포함할 것인지 여부가 논란이 됐지만 결국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이시윤 감사원장은 국회에서 "선관위 사무는 행정작용이라는 점에서 직무 감찰에서 배제되는 사법작용이나 입법작용과는 다르고, 과거 50년간 직무 감찰 대상이 됐음에도 정당의 자유로운 활동에 지장을 받은 사례가 없다"면서 "막대한 국고보조금이 나가는 정당 감독에 관한 사무가 직무 감찰에서 배제된다면 선관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불가능하게 된다"고 했다.

미국의 연방선거위원회(Federal Election Commission)도 행정기관인 독립 규제기관이며, 프랑스 선거관리위원회(CNCCEP) 역시 독립 행정기관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다. 모두 행정기관인 것이다. '독립'의 의미는 직무상 상위 기관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지, 결코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감시·견제·통제받지 않고 무책임하게 방치돼도 좋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법원은 법무부 소속 기관으로서 사법권 독립이 보장되지만 재판 사무를 제외한 나머지 업무는 법무부 감사관실의 직무 감사를 받는다. 선관위를 헌법상 독립기구로 규정한 취지는 선거 사무의 공정성 보장을 위한 것일 뿐 결코 부패의 자유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헌재는 망각했다.

선관위 조직과 업무 범위가 지나치게 방대하다는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 선관위 전체 직원이 3천 명에 이르지만 미국 연방선관위 직원 수는 2018년 기준 509명에 불과하다. 선관위가 선거 관리와 정당 사무관리 외에도 정치자금 사무관리, 민주시민 정치교육, 선거정치제도 연구를 업무로 하면서 권한이 비대해지고 있다.

특히 정치자금 관련 사무가 문제다. 국고보조금 지급 및 지출 상황 관리, 기탁금 수탁 및 배분, 후원회 등록 및 기부 상황, 정치자금 모금 등을 선관위가 감독하는데 정치적으로 편향된 선관위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프랑스의 경우 선관위에서 선거 관리를 하지만 헌법위원회와 함께 선거자금은 별도 기구인 선거자금관리위원회에서, 미디어와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방송정보통신규제기구에서 각각 감독하는 것과 비교된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대법관이 명예직처럼 관행적으로 비상근 선관위원장을 맡아 왔다. 그 결과 사무총장과 상임위원이 선관위를 좌우하며 부패의 온상으로 만들었다. 지역 선관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헌법재판관 8명 중 6명이 지역 선관위원장 출신이라는 점이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지도 논란이다.

각급 선관위원장 임명 절차 개선, 업무의 분산과 축소, 외부 기관을 통한 투명한 직무 관리, 조직과 정원의 대폭 축소 등 개혁이 시급하다. 썩어 문드러진 불공정·비리 구조를 방치하고 끝내 개혁을 거부한다면 국민들은 선관위의 근본적 존폐 여부를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