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걸 칼럼] 제106주년 3·1절과 분열의 대한민국

입력 2025-03-02 13:26:04 수정 2025-03-02 17:40:41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106년 전 오늘, 우리 선조들은 비폭력 평화 시위를 통해 세계만방에 대한의 자주독립을 선언했다. 이를 필두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다수의 독립운동 단체가 결성돼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에 나섰다.

해외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것은 주로 국내 인사들과 만주, 하와이의 재외동포들이었다. 일제의 눈을 피해 가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상해로 보냈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주린 배를 움켜쥐며 한 푼 두 푼 모은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했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수많은 애국지사와 이름 없는 민초들이 만든 나라다.

국권 회복의 대의에 공감했던 독립운동가들이었지만 노선 투쟁과 이해관계에 빠져 힘을 합치지는 못했다. 광복군 창설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백범은 가슴에 총탄을 맞아 죽을 고비를 넘겼고, 끝내 광복군은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 단체들의 참여 없이 뒤늦게 결성됐다. 임시정부는 결국 2차대전 말기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하지 못해 참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필자는 지난 2019년 모 일간지에 '분열의 DNA'란 제목의 칼럼을 게재한 바 있다. 엄혹했던 일제에 저항할 때도 단합하지 못했던 것은 우리 민족에게 타고난 분열의 DNA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오늘날 온 국민이 탄핵 찬성과 반대로 갈라져 서로에게 막말과 분노를 쏟아부으며 다투는 것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그런 가운데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3년 차에 접어든 우·러 전쟁에 더 이상의 지원은 없다는 협박과 함께 희토류를 비롯한 우크라이나의 광물자원의 공동 개발을 요구한 트럼프에 의해 강요된 회담이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국가의 명운을 건 회담이었지만 두 대통령 간 감정 대립이 여과 없이 생중계되면서 회담은 시작도 하기 전에 파국으로 치달았다.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약소국의 운명을 이보다 더 적확하게 보여준 사례는 없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떠올리지 않은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전쟁 중인 약소국의 대통령으로서 왜 모멸감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전쟁 재발을 막아야만 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배수진까지 쳐가며 미국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냈다. 냉전을 앞둔 세계에 반공주의 확산과 이승만 대통령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그때 이미 세계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지금 우린 초복합적 국가 위기에 놓여 있다.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의정 갈등은 1년을 넘어서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 문제는 인재의 의대 쏠림 현상이다. AI 혁명 시대에 변화에 둔감한 정부(교육부)가 대학 학과 개설과 증원권을 쥐고 있다. 주 52시간제로 연구개발자들이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다. 재정자립도 10%를 밑도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수백억원을 뿌린다. 그러고도 잘 살면 그게 불공정한 것 아닌가.

세계의 변화는 더욱 위협적이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세운 미국은 현재의 세계 체제를 무너뜨리고 있고, 미·중 간 패권 경쟁은 반도체와 AI 등 첨단산업과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의 굴기를 앞당겨 우리를 위협한다. 트럼프의 공격적 관세정책은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선조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이 나라가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그냥 바람이 아니라 거대한 태풍이다. 북한은 자타 공인 핵보유국이 됐고, 트럼프는 곧 우리를 배제하고 북한과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이다. 10배 이상 증액한 주한미군 주둔비용 청구서를 만지작거리고 있고 반도체와 자동차 등 우리의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25% 관세 부과는 시간문제다.

하긴 한국을 머니 머신, 즉 돈 찍어 내는 기계로 인식하고 있는 돈벌레 트럼프가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도 정치 지도자들은 알량한 권력욕에 눈이 멀어 모든 위협을 애써 외면하고, 국민을 갈라치고 있다.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