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은 소설가
지금처럼 염전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화폐 대신 사용할 정도로 소금이 귀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군인이나 관리의 월급을 소금으로 주기도 했다. 서양사에서 특히나 소금이 중요했던 이유는 대항해시대에 염장한 육류와 생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육지를 디딜 수 없었던 선원들에게 단백질의 주요 공급책은 낚싯대도, 냉장고도 아닌 소금이었던 것이다.
소금은 대표적인 슬로푸드이다. 바닷물을 저수지에 저장해 태양열과 바람을 이용해 서서히 증발시키면서 염도를 높인다. 말라가는 소금을 쓸어모으고 펼치고 또 모으는 써레질을 끝없이 해나가며 알갱이를 만든다. 결정체가 만들어졌다고 끝이 아니다. 그 천일염을 다시 소금 창고에 쌓아 놓고 6개월에서 1년에 걸쳐 간수를 빼야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게 된다.
바위에 부딪혀 포말을 일으키던 푸르고 짠 바닷물이 하얗고 딱딱한 결정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상상할 때마다 마치 글 쓰는 자의 운명과도 같다고 느껴지는 건 또, '기-승-전-소설'로 귀결되는 필자만의 증후군일까.
2024년, 우리 문단계는 큰 쾌거를 거두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인데, 문인들의 입장에서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덩달아 출판 업계가 호황을 누린다는 뉴스와 관련 주가의 상승까지 불러일으켰다는 짜릿한 기사도 봤다. 긍정적인 여파인지 필자가 강의하는 문예영재원에도 올해 지원자 수가 많아져서 강사진의 수를 늘렸다고.
그래도 대놓고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게, 어떤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어둑하기만 하던 문학판에 너무도 쨍하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지는 일이 낯설기도 했고, 또 순식간에 뻥 튀겨진 소문은 언젠가 그 거품이 빠지게 마련일 테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시적으로 서적출판업이 반짝 상승했지만 한 달 만에 뒷걸음질 쳤고, 파주 출판인쇄단지는 다시 한산해졌다는 기사를 봤다. 없어서 못 팔았던 한강 작가의 책이었지만 그 특수 효과도 금방 식어버린 것이다.
김빠지는 날이 과연 언제 찾아올까, 조마조마했던 예상은 어김없이 도착하고 말았다.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순 없지만 딱히 참담하지는 않았다. 태양이 작열하든 구름에 흐리든 바닷물은 천천히 증발하며 소금을 만들어내고 있듯이 글의 운명도 어차피 작가 혼자서 조용히 가야 하는 먼 길 속의 느린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빛이 들어오거나 그렇지 않거나 엉덩이 딱 붙이고 앉아서 쓸 사람은 끝까지 쓸 것이고, 물살에 휩쓸려 한번 발을 담가 본 자라면 그 동력이 금세 떨어지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필자 옆에서, 혹은 어느 캄캄한 새벽 다락방에서 온갖 감성과 지식과 상상력을 증발시키며 '글'을 탄생시키고 있는 문우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어여쁜지 모르겠다. 그들이 끝없는 써레질로 만들어내고 있는 건 모두 소금밭의 느린 결정체가 아닐까. 작가에게 인고를 염장시켜 아주 오래된 미래를 만들게 하는 과정. 그 험난한 대항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탄생시키는 결정체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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