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송지혜] 실망한 관객의 고백

입력 2025-02-09 13:52:26 수정 2025-02-09 17:59:18

송지혜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송지혜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송지혜 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수년 전, 공연장에서 나는 큰 실망을 경험했다. 기대를 품고 찾은 공연에서 얻은 것은 감동이 아닌 '허무함'이었다. 객석에서 뜨거운 박수와 앵콜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자리를 떠나고 싶었지만, 공연 예의상 그럴 수 없다는 압박감에 결국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해진 공연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도 앵콜은 계속됐다. 자리를 뜨자니 나는 마치 내가 예의 없는 관객이 돼 뭔가 잘못하는 것처럼 느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 상황에 답답함과 분노가 치밀었다. 왜 나는 이토록 화가 난 것일까? 공연에서 이렇게까지 불쾌함을 느낄 이유가 있었을까?

그 날 느꼈던 불편한 감정은, 단순히 내가 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탓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공연장에서 다른 관객들의 '환호'에 공감하지 못했고 내가 느꼈던 '불만'은 다수의 환호하는 군중에 의해 묵살 당했다. 오히려 절대 소수였던 내가 잘못된 음악적 취향과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시 겪는다 해도 앵콜을 외치는 관객들, 무대 위 만족한 연주자의 얼굴들, 그리고 그 속에 '불만족'을 느끼지만 모두가 허용할 때까지 객석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회적 압박'은 매우 낯설고 불편할 것 같다.

그 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용기가 없었던 나는 결국 내 '보지 않을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다. 나는 원하지 않는 앵콜을 끝까지 들어야만 했고, 그 상황 속에서 내 자신을 가둬뒀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 명의 관객 개인의 선택 문제로 해결될 수 없다. 또 불만족한 관객을 위한 환불 정책을 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우리는 '공연을 볼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핸드폰을 진동으로 바꾸고,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고 하는 예의를 지키는 것만큼이나 '보지 않을 권리'도 존중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예술가는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책임을 다해야 하며, 관객 역시 예술가의 작품에 응당 감응을 보여야 하지만, 누구는 그 실망에 대해 불만을 표현할 권리가 있지 않을까? 앵콜을 외치는 것이 '볼 권리'라면 앵콜을 보지 않고 자리를 떠나는 관객이 나쁜 매너의 관객으로 취급 당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권리 존중'이라면 말이다.

이 모든 과정이 허락돼야만 예술은 발전하고 다양화될 수 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관객의 선택도 상호작용으로 인정돼야 무대는 더 건강하게 발전하고, 문화 산업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강요된 예의나 피상적인 감상에 머물러서는 예술이 진정으로 발전할 수 없다. '보지 않을 권리'가 존중 받을 때, 문화 환경은 진정으로 건강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