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에게 물어봐
이 제목을 듣고 개그맨 이경규의 바보 역할 코미디가 먼저 떠올랐다. 옛날 사람이라고 놀려도 좋다. 넷플릭스도 없던 어린 시절 최고의 웃음 콘텐츠는 <유머1번지>였고 그곳에서 개그맨들의 주옥같은 유행어가 탄생했다. 김형곤의 '잘 될 턱이 있나', 김학래의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 딸랑딸랑', 심형래의 '영구없다', 김정렬의 '숭구리당당 숭당당'…. 1983년 부터 약 10년간 안방극장의 주인공이었던 프로그램이었으니 이런 연상 작용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넷플릭스 시리즈 <별들에게 물어봐>는 우주 정거장 커맨더 이브(공효진)와 산부인과 의사인 공룡(이민우)의 로맨스를 SF형식으로 풀어가는 작품이다. 배우들을 와이어에 달아서 마치 무중력인 것처럼 촬영하는 등 그 시각적 효과가 볼거리를 제공하는데 정작 필자인 수의사의 눈에는 다른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의도치 않게 수하물을 통해 초파리가 무임 승차를 한 후 번식을 하는 모습이라든가 무중력 상태에서 임신 가능 여부를 테스트하려고 실험용 쥐를 탑승시킨 장면이다. 언뜻보면 인간의 우주선에 초대된 생명체인 것 같지만 사실은 초파리를 포함해서 동물들이 인간보다 먼저 우주의 문을 열었다.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라이카](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5/2025020511260364528_l.jpg)
◆우주 실험에 투입할 개 조건
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먼저 우주로 인공 위성을 쏘려고 경쟁을 했다. 이것은 순수한 기술 경쟁이 아니었다. 발사체 위에 인공 위성을 올리면 우주 개발이지만 만약에 수소폭탄을 발사체 위에 탑재를 하면 그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축배를 든 것은 소련이었다. 1957년 10월 세계 최초의 인공 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과학 기술 분야에서 소련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었던 미국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이를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한다.
자 그러면 다음 경쟁 과목은 무엇일까? 당연히 사람을 우주선에 태우는 일이 된다. 당시 과학자들의 최대 난제는 '무중력 상태에서 오랫동안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간의 과학 발전사가 늘 그랬듯이 이 문제를 풀기위한 첫 희생은 동물들의 몫이 된다. 과학자들이 우주 실험에 투입할 개를 선택하는 기준은 명확했다.
![러시안-유러피안 라이카 품종의 개(사진출처 world dog finder)](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5/2025020511223996128_l.jpg)
먼저 사람이 애지중지 키운 애완견은 제외했다.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혹독한 추위 속에서 홀로 살고있는 주인 없는 개가 적합했던 것이다. 또 캡슐형 우주선에 타야 했기 때문에 작은 체구여야 했고 우주복 설계가 쉽도록 성기가 노출되지 않은 암컷이 유리했다.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먹이를 찾던 라이카도 그렇게 모스크바 항공의학연구소로 붙잡혀갔다. 신장 35cm, 몸무게 6kg 정도로 몸집이 작았던 암컷 강아지 '라이카'는 과학자들이 생각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이름으로 알고 있지만 라이카는 강아지의 품종이다. 라이카는 러시아에서 사냥개를 통칭하는 말인데 그중에서도 북부 러시아의 사냥개를 의미한다. 크게 5가지 견종으로 나누어지는데 우리의 주인공 라이카는 러시아-유러피안(Russo-European Laika) 종이었다고 한다. 북동부 유럽과 러시아 견종이 섞인 대형견으로 다람쥐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 사냥을 돕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길거리에서 잡힌 녀석은 몸집이 작은 걸로 봐서 순수 혈통이 아닌 믹스견이라고 추정된다.
![라이카를 비롯한 강아지들이 원심력 적응훈련을 받고 있다.(사진출처 Tass통신)](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5/2025020511214743831_l.jpg)
◆라이카의 불행한 죽음
이렇게 선발(?)된 라이카는 실제 우주 실험에 투입되기 전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우주복 착용하기, 움직이지 않기, 우주선 안에서 음식 먹기, 원심력 적응하기 등 여러 훈련을 거쳤다. 그 어려운 일들을 다해낸 라이카는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서 '쿠드럅카'라는 애칭도 얻게 되는데 스푸트니크 1호가 발사된 한 달 후 드디어 라이카가 탑승한 스푸트니크 2호도 예정된 궤도에 안착했다.
소련 전역에는 라이카가 우주선 안에서 짖는 소리가 방송됐고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생명체가 지구 궤도를 비행하는 모습에 열광했다. 스푸트니크 2호에는 산소 발생, 이산화탄소 제거, 온도 조절, 음식 공급 장치 등 라이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라이카의 몸에는 맥박, 체온, 호흡 등 여러 생체 정보를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센서들이 부착돼 있었다.
하지만 라이카는 처음부터 우주에서 죽을 운명이었다. 과학자들은 라이카가 우주 공간에서 일주일 동안 생존하게 한 다음 고통없이 죽을 수 있도록 독극물이 든 먹이를 줘서 안락사를 시킬 계획이었다. 실험이 끝난 뒤 소련은 라이카가 계획대로 일주일 동안 생존했다고 발표했다. 그 후 스푸트니크 2호는 162일 동안 지구를 2,370회 돈 다음 대기권으로 진입해서 불타 소실됐다.
![1957년 11월 바이코누르 우주발사장에서 발사되고 있는 스푸트니크2호](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5/2025020511205296185_l.jpg)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한 라이카](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5/2025020511260392104_l.jpg)
45년 뒤 이러한 소련의 발표는 거짓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스푸트니크 2호 발사 계획에 참여했던 러시아 과학자가 진실을 밝혔던 것이다. 그가 제시한 자료들에 따르면 발사 직후 로켓의 단열재 불량으로 라이카가 타고 있는 우주선 내부 온도가 41도까지 올라갔고 산소도 부족해졌다.
라이카의 심장박동은 3배 이상 치솟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발사 6,7시간 만에 생명 신호가 끊겨버렸다는 것이다. 잡혀온 다른 강아지들보다 적응력이 뛰어나고 영리하면서도 연구원들을 잘 따를 정도로 온순했던 까닭에 역설적으로 불행한 죽음을 맞게 된 라이카였던 것이다.
![라이카의 우주비행을 기념하는 우표(1957년 루마니아)(사진출처 NASA)](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5/2025020511221346400_l.jpg)
◆ '벨카'와 '스트렐카'
라이카 이후에도 소련은 계속 강아지를 우주로 올려보내는 실험을 했다. 1960년 8월 스푸트니크 5호에도 암수 한 쌍의 강아지 '벨카'와 '스트렐카'가 탑승했다. 벨카와 스트렐카는 라이카와는 달리 발사 하루 만에 지구를 17바퀴 돈 다음 지구로 무사히 돌아왔다. 우주로 나간 생명체가 다시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비행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우주비행을 마친 스트렐카는 몇 개월 뒤에 새끼 6마리를 건강하게 출산을 했다. 이것은 짧은 기간 우주환경에 노출된다 하더라도 생명 활동에 지장이 없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었다. 이렇게 라이카를 시작으로 소련과 미국에서는 많은 동물들을 희생시키면서 실험을 반복했고 마침내 1961년 소련은 인류 최초의 우주인인 유리 가가린을 보스토크 1호에 태우고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비행에 성공하게 된다.
![영국의 동물실험반대협회가 매년 4월24일을 세계실험동물의 날로 제정했다](https://www.imaeil.com/photos/2025/02/05/2025020511262781750_l.jpg)
인류의 과학과 의학기술의 발전에는 동물의 희생이 필수불가결했다. 지금도 제약회사나 화장품업체 등에서는 여전히 동물들을 실험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도 크다. 1979년 영국의 동물실험반대협회는 창립자인 휴 다우닝의 생일을 따서 매년 4월 24일을 '세계 실험동물의 날'로 정하고 세계 곳곳에서 실험동물 사용을 중단하는 시위와 행사를 독려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4월 24일에는 동물 실험을 진행하는 여러 기관과 연구소에서 '실험 동물 위령제'를 열고 있고 동물 보호단체들은 한 목소리로 실험 동물의 수를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농림축산검역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사용된 실험 동물의 수는 약 499만 마리로 나타났다.
사람에 앞서 우주로 나간 동물들, 사람 대신에 각종 약품을 섭취한 동물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인간은 과학과 의학의 길에서 한 발자국도 앞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후손들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닐까?
![박순석](https://www.imaeil.com/photos/2022/07/25/2022072513283963580_s.jpg)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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