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은 소설가
긴 연휴가 끝났다. 어째 오랜만에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는데도 이전처럼 그저 흥겹지만은 않았던 게, 혼자만의 착각이었을까? 연휴 짬짬이 핸드폰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미 스마트폰과 혼연일체 된 현대인의 라이프 패턴이기도 하지만, 언제부턴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정치·사회 파트의 헤드라인부터 확인하게 되는 현실적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흥겨워야 하는 명절이 분명 맞는데, 선조들에게서 신명이라는 DNA를 물려받은 한민족임이 틀림없는데….
광적으로 집착하게 돼버린 휴대전화 속 디지털시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암울하게 멈춰있는 현실 세계에서 계절의 시계도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었다. 며칠 후면 입춘이다. 봄. 우리의 사계절 이름 모두가 울림소리 자음으로 끝나는데 봄이라는 언어에는 설렘이라는 MSG가 몇 스푼쯤 더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봄에 태어난 필자만의 각별한 감성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봄이 오면, 팡팡 터지는 팝콘처럼 마른 나뭇가지에서 새순과 꽃봉오리들이 틔워 오르듯 가슴이 말랑말랑해지는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날 것만 같다. 봄은 곧 시작이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신명을 물려준 조상들의 시작은 사실 봄이 아니라 겨울이었다. 한국은 본디 농경사회였다. 씨를 뿌리고 논에 물을 대는 봄이 시작일 것 같지만 기실 농부는 겨울부터 농사일을 준비한다. 녹슨 농기구를 정비하고 마른 논밭에 거름을 주며, 종자를 틔우고 과일나무를 가지치기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겨울은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숨 쉬는 휴식기이기도 하고,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기간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농부의 진짜 계절은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겨울이었다.
겨우내 꽝꽝 얼어있던 몸을 일으켜 노동을 시작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다. 오죽하면 설과 정월대보름을 지나 2월 초하루가 되면 울타리 붙잡고 울어야 한다는 섧고도 우스꽝스러운 말까지 생겨났을까. 그래도 하루하루의 작은 부지런함이 큰 성과를 만든다고, 우리 선조들은 바지런하게 팔다리를 놀렸다. 움직이다 보면 땀이 났고, 몸이 풀리자 저절로 다른 일을 찾아서 하게 됐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흥이 따라붙었다. 추위 옆에서 신명도 함께 들썩거렸던 것이다.
흥겨운 멋이나 기분, 신명. 혼란한 이 시국에 신명이란 단어는 어쩌면 우리에게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보리 풍년 든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라는 옛말처럼 겨울의 상징인 눈이 결코 시리디시린 시련만은 아닐 것이다. 겨울의 날씨로 다가올 결실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품듯이 너무 춥다고 바짝 움츠릴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겨울에 우리의 팔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생각해 보자. 바지런하게 움직이다 보면 추위가 물러날 것이고, 새해와 설에 놓쳤던 아쉬운 것들은 송골송골 땀이 솟을 때쯤 과감히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다음엔 반드시 신명 나는 봄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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