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호 기획탐사팀장
한국 정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승자독식'이라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극단적인 정치 문화가 일상이 됐다. 거대한 두 정당이 의회를 독점하는 동안,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는 소외됐다. 현재 선거제도는 무더기 사표(死票)를 낳는다. 민심은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친다.
이러한 왜곡된 정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지난해 제22대 총선이다. 지역구 선거에서 무려 1천222만 표가 '죽은 표'로 버려졌다. 이는 전체 유효 표의 41.9%에 달한다. 경기 화성시을의 경우 57.6%라는 기록적인 사표 비율을 기록했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의 구조적 한계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 제도는 단순히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만 당선시키기 때문에, 유권자의 의사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 투표의 효능감을 느낄 수 없는 우리 민주주의의 민낯이다. 국민의 선택이 의회 구성에서 심각하게 왜곡돼 있음을 보여 준다.
소선거구제는 대표성과 비례성을 떨어뜨린다. 대표성은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반영하는 데 실패하고, 비례성은 정당 득표율이 의석수에 반영되지 못하는 문제를 초래한다. 지난 총선 지역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50.6%의 득표율로 63.4%의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45.1%의 득표율로 35.4%의 의석에 그쳤다. 군소 정당은 사실상 배제됐다.
거대 양당 체제는 국민의 선택지를 제한하고, 정치적 타협을 어렵게 만든다. 대립과 적대가 일상화된 국회에선 협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해답은 중대선거구제와 비례대표 확대에 있다.
중대선거구제는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을 뽑는 방식으로, 사표를 줄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을 넓힌다. 이를 통해 지역주의를 완화하고,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 이를 통한 대표성 향상은 정치적 안정과 국민 신뢰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정당 내부 계파 갈등과 후보 공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현재 전체 의석 중 15%에 불과한 비례대표 비율도 3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을 1대 1로 맞추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를 위해 국회의원 정수를 400명으로 늘리는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지역구 200석, 비례대표 200석의 균형 잡힌 구조는 우리 정치의 지평을 넓히는 청사진이 될 것이다.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2023년 기준 독일 연방의회에선 여러 정당이 10~30%의 의석을 나눠 가지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실현하고 있다. 마치 여러 색이 어우러진 무지개처럼, 정치적 다양성이 민주주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증거다.
우리 정치는 이제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은 양당제의 낡은 길이고, 다른 쪽은 다당제라는 새로운 미래다.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 확대는 새로운 길을 닦는 초석이 될 것이다. 한국 정치는 갈등과 대결을 낳는 승자독식 양당제가 아닌 대화와 타협의 다당제로 나아가야 한다.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국민은 더 나은 정치를 원하고 있다. 정치권은 이를 받아들여, 제도 개선을 위한 용기 있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특정 정당의 유불리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 오직 기준은 한국 정치의 미래, 그리고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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