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위에서 노는 아이들… 수심 깊은 '하천 보' 익사 위험 가중

입력 2025-01-24 15:58:56 수정 2025-01-24 16:47:38

"아이들 자주 노는 놀이터였다" 수심 깊은 보 근처서 뛰노는 아이들
펜스·현수막·안내판 설치해도… 아이들 접근 막기엔 역부족
전문가 "계절 무관하게 하천 접근 금해야… 안전 교육·홍보 필요"

지난 23일 초등학생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팔거천 인근. 사고 위험이 커 하천에 접근해선 안 된다고 알리는 현수막 너머로 새하얀 얼음이 넓게 펼쳐져 있다.
지난 23일 초등학생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팔거천 인근. 사고 위험이 커 하천에 접근해선 안 된다고 알리는 현수막 너머로 새하얀 얼음이 넓게 펼쳐져 있다.

24일 오전 10시쯤 찾은 대구 북구 팔거천 일대. 낮은 펜스 너머에 얼어있는 하천은 겉으로 보기엔 단단히 얼어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수심이나 얼음의 두께를 알기 어려웠다. 전날 이곳에서 초등학생 네 명이 놀다가 얼음이 깨져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대구 북구 주민들의 대표적인 산책로로 알려진 팔거천이 안전사고 위험지대로 떠올랐다. 이곳은 수심이 2m 가까이로 깊지만, 육안으로는 하천 바닥이 보여 깊이나 위험성을 알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겨울철에는 결빙이 잦지만 얼음의 두께를 알 수가 없어 위험성은 더욱 크다.

사고 지점은 얼음이 쉽게 얼어 어린 아이들이 자주 놀던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천 위에 설치된 팔달역 교가로 인해 그늘이 지면서, 기온이 낮아져 빙판이 형성되기 쉬운 모습이었다. 약 200m쯤 떨어진 산책로에 비해 훨씬 서늘하고 바람이 자주 불었다.

해당 지점은 팔거천 수위를 조절하는 목적인 '가동보'가 설치돼 있어 물이 모여 있어 다른 지점보다 수심이 깊어 익사의 위험이 큰 곳이다. 경찰은 학생들이 놀던 팔거천 부근의 수심이 최고 1m 80㎝에 달한다고 추정하고 있다.

북구청은 사고를 막고자 안전 조치를 취했지만, 실질적으로 아이들의 접근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들은 사고 위험을 알리는 현수막과 안내판을 설치하고, 접근을 물리적으로 막고자 인근 700m 구간에 펜스를 설치했다. 하지만 펜스 높이가 1m가 채 되지 않아, 청소년이나 아이들도 펜스를 쉽게 넘어 얼어있는 하천으로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인근 주민들은 학생들이 얼음 위에서 노는 모습을 적잖이 봤다고 입을 모았다. 종종 팔거천을 산책하는 권의자(69) 씨는 "이틀 전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사고가 난 장소에서 노는 걸 봤다"며 "들어가면 얼음이 깨져 빠질 수 있다고 소리치니 그제야 얼음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운동을 하러 팔거천에 나오는 이모(68) 씨는 "아이들도 자주 들어가지만 성인들도 장난삼아 들어가는 걸 본 적이 있다"며 "자주 하천에 나오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수심이 깊다는 걸 알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빙판 위에 올라가거나 나뭇가지와 돌을 던지며 논다"고 했다.

수심이 깊은 보의 인근인 만큼, 예견된 사고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침저녁으로 팔거천에 나와 산책을 한다는 허영창(75) 씨는 "아이들 열댓명이 자전거를 타고 무리 지어 와 얼음 위에서 노는데, 말려도 듣질 않아 걱정했다"며 "수심이 깊어 큰 사고가 날까봐, 겨울철에만 취수보를 해체해달라고 민원을 넣으려 했다. 이제부터라도 구청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하천을 관할하는 북구청은 사고 위험을 알리는 안전 조치를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북구청 관계자는 "설치에 필요한 조건을 만족하는 장소가 팔달역 인근 뿐이라 사고 지점에 보를 설치했으며, 당분간 해체 계획도 없다"며 "익사 위험을 알리는 현수막을 추가로 설치해 접근을 막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계절에 관계 없이 하천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며, 결빙에 대비한 안전 대책·조치도 자연 재난에 준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노성진 국립금오공과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는 "하천은 어느 구간이든, 어떤 계절이든 위험하다. 수면이 얼어 있더라도 하천 아래는 물이 흐르고 있고, 보 인근은 수심이 상당히 깊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정말 크다"며 "홍수 등 자연재난 대책과 마찬가지로 하천 결빙과 관련해 인근 주민들과 아이들이 안전 의식을 기를 수 있도록 효과적인 교육이나 홍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24일 팔달역 아래에 설치된 보에 의해 물이 모여있는 모습. 보 상단은 물 아래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심이 깊어 보였다.
24일 팔달역 아래에 설치된 보에 의해 물이 모여있는 모습. 보 상단은 물 아래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심이 깊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