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대의 건축인문기행] 세계의 국회의사당 건축, 민주주의를 설계하다.

입력 2025-01-23 14:30:58 수정 2025-01-23 16:00:21

호수 위 현대건축 조형성의 캔버라 국회의사당 정면, 그 정점에 대형국기가 나부낀다.
호수 위 현대건축 조형성의 캔버라 국회의사당 정면, 그 정점에 대형국기가 나부낀다.

연일 뉴스 화면에 등장하는 우리 정치의 모습은 길거리 광장의 시끄러운 함성과 아우성의 대립이다. 민주주의가 시작된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아고라(Agora)는 모두가 평등한 시민 토론의 광장이었다. 근대국가 형성 이후부터는 '국회의사당'이라는 권위적 건축이 세워지며 국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상징 건축이 되었다.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듯이 과연 우리 입법, 행정, 사법 최고 관청건축은 국격을 반영하며 나라를 상징하고 있는가? 이 시대와 우리의 건축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된다.

국회의사당은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입법 민주주의 현장으로서 세계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사 건축이었다. 역사의 전환기 세계 여러 나라들은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새 국회의사당 건축을 건립했다. 나라, 정치, 국격을 새롭게 하는 세계의 국회의사당 건축을 찾아본다.

호주 캔버라의 질서정연한 계획도시 언덕 위 국회의사당은 랜드마크로서 세계적 관광명소이다.
호주 캔버라의 질서정연한 계획도시 언덕 위 국회의사당은 랜드마크로서 세계적 관광명소이다.

◆호주 캔버라 의회의사당- 도시 언덕 위 랜드마크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로 인하여 호주 수도를 시드니로 혼동하기도 한다. 캔버라는 1913년 시드니에서 옮겨진 호주의 새 수도이며 현대 예술, 디자인, 건축, 관광도시이자 호주 연방 의회가 있는 정치 중심도시이다.

1988년에 세워진 호주 연방공화국 의사당(Parliament House)은 호주 지폐에 등장하며 영국 식민지였던 호주는 영국처럼 양원제를 채택, 상 하원 의사당이 좌우 나란히 있다. 언덕 위 캐피틀 힐(Capitol Hill)에 위치한 의사당 건물은 도시 제1의 랜드마크로 수많은 관광객이 줄을 잇는다.

질서정연한 계획도시답게 행정타운 끝자락 언덕 위 의사당은 현대적인 조형으로 나타난다. 건물은 경사진 언덕 아래 묻힌 듯, 간결한 정면에는 캥거루 에뮤 상징 휘장, 중앙의 81미터 높이 스테인리스 기하 조형물, 그 정점에는 대형 호주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미국 건축가 지울 골라가 설계한 건축 캐피틀 힐은 자연 지형과 환경이 조화로우며 호주 전통 문화적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 1981년에 착공하여 건국 200주년 기념일 1988년 5월 완공한 의사당은 당시 남반구에서 가장 높은 공사비로 심혈을 기울인 건축이다.

X자 배치 양편으로 하원과 상원이 위치하며 두 날갯짓의 조화로 함께 날아오르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상 6층, 3,500석 대회의실, 특히 4,500객실이 있다는 것은 밤낮 의정활동과 외부인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호주 국회 의사당의 국기 조형물 스케치.
호주 국회 의사당의 국기 조형물 스케치.

건축 내부 기능을 색상으로 구분하고 있다. 상원 건물은 북·중부지역에서 생산되는 레드 오크의 붉은색, 하원 건물은 유칼립투스 잎의 녹색으로 호주의 풍토와 환경적 건축재료를 적용한다.

건물 안팎에는 3천여 점의 그림, 조각, 장식품, 사진 작품들이 전시, 의회 홀 바닥은 원주민 예술가의 화강암 모자이크 작품으로 건축, 예술, 공예, 장식 예술이 어우러진 미술관 의사당이다. 캐피틀 힐 의사당 주변은 푸른 나무와 다채로운 정원으로 건축과 환경,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모든 회의는 상시 생중계되는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의사당이다.

만약 우리나라 국회의사당이 세종 행정도시로 옮겨갈 수 있었다면 언덕 위 캐피틀 힐(Capitol Hill)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고전주의 바로크양식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100년 후, 통일 독일의 의사당으로 재탄생하였다.
신고전주의 바로크양식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100년 후, 통일 독일의 의사당으로 재탄생하였다.

◆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시민 개방의 투명 유리 돔

독일의 역사처럼 의사당 건축 또한 부침의 역사였다. 빌헬름 황제의 단일국가 통일(1871년) 후 23년이 지나 1894년 베를린에 첫 의사당이 건립되었다. 화려하고 육중한 신고전주의 바로크양식의 의사당은 당시 베를린 대성당 다음으로 높은 건물이었다.

히틀러 독재 권력의 등장과 의사당 화재 사건, 제2차 세계대전이후 독일은 1942년 동서독으로 분단국이 되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100여 년 역사의 증인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통일 독일의 국회의사당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독일 국회의사당은 시민들은 경사로를 따라 돔 지붕으로 오르며,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회의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독일 국회의사당은 시민들은 경사로를 따라 돔 지붕으로 오르며,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회의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

1992년, 통일독일 새 위상을 위한 의사당 건립을 시작하며 오랜 논의 끝에 신축이 아닌 기존 건축의 원형을 유지하는 설계 공모에서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당선되었다. 2차대전 전범국, 통일독일의 위상, 세계평화를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은 고전 권위적인 중앙 돔 설계 방향에 관심이 집중되었으며 새로운 투명 유리 돔(직경 40m, 높이 23.5m)으로 '의회 투명성'을 설계했다. 권위적 고전건축 위에 현대건축 투명 돔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투명한 민주주의'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단순히 상징에서 벗어나 방문객들은 유리 경사로를 따라서 내부를 바라보며 돔 지붕으로 오르는 공공디자인이다. 발아래로 내려다보는 중앙회의실은 시민 아래 위치에서 봉사한다는 의회 정신을 설계한 것이다. 중정과 이동 동선 곳곳에서 국가 의사를 결정하는 회의장을 바라볼 수가 있다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의 유리 돔 로비 스케치.
독일 베를린 국회의사당의 유리 돔 로비 스케치.

원형 돔 옥상은 베를린 시가지를 바라보는 조망 휴식 공간이며 유리 돔에서 퍼져나오는 밤의 불빛은 나라의 미래를 밝히는 등대처럼 보인다. 돔 중앙홀에는 원추형의 반사 유리 기둥이 있다, 유리 태양광으로 실내 밝기를 유지하며 건물 내부 공기 순환 기능을 갖는다. 상부의 유리 돔은 개방 투명의 상징성, 공공적 조망 공간, 친환경 에너지를 함께 해결하고 있다.

건물 곳곳에는 2차대전 당시의 포탄 흔적, 러시아 점령군과 희생 장병들의 낙서 흔적들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의사당은 전쟁의 상처와 교훈을 생생히 전하는 전쟁 역사박물관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분단의 역사를 뒤로하고 21세기 민주주의 희망의 건축을 설계한 노먼 포스터는 베를린 국회의사당이 완공된 1999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호수 위 성채(城砦)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은 루이스 칸 설계의 20세기 최대 건축 유산이다.
호수 위 성채(城砦)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은 루이스 칸 설계의 20세기 최대 건축 유산이다.

◆ 방글라데시 다카 국회의사당- 루이스 칸 건축 철학

루이스 칸(Louis Kahn) 설계의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은 20세기의 최대 건축 유산이자 불멸의 건축으로 평가받는다. 1959년, 파키스탄의 지배하에 설계가 시작되었으나 독립 분쟁으로 13년간 진행이 중단되었다.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며 방글라데시 상징으로 재추진하지만, 재정 빈곤으로 설계를 대폭 수정 축소하여 초기 예산의 두 배 비용으로 23년을 지난 1982년 완성되었다. 나라의 독립, 자유, 지속을 상징하는 불멸의 건축으로 진화한 것은 건축가의 노력과 희생이었다.

거대한 행정 복합 단지에 세워진 의회 건축은 세계에서도 가장 큰 입법부 중 하나로서 인공호수 위 성채(城砦)처럼 '빛과 그림자'의 추상적 형태는 명상 철학 사유의 건축으로 서 있다. 건축 구성은 16각형의 의사당 회의장을 구심점으로 사무동과 부속동은 방사형 기하학 질서에 따라서 기능이 융합 배열된다.

기하학 구조의 조형적 건축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기하학 구조의 조형적 건축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호수 위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스케치.
호수 위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스케치.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며 의원 기숙사와 대통령 집무실 행정기능이 이웃하고 있으며 호수 공간은 열대지역 건물의 자연적 냉각 효과이며 벵골만 자연의 지역 풍토와 연계하고 있다. 거친 콘크리트와 대리석 조합의 독특한 구조적 조형성은 모더니즘 건축의 힘을 구현한 의사당으로 방글라데시의 문화유산을 대표하고 있다.

독립 신생 빈민국의 의사당 건축에 '기하 형태 공간'의 '빛과 그림자' 건축 개념을 실현키 위해 건축가는 생의 후반 23년 동안 포기하지 않았다. 오랜 진행 과정으로 인한 경제적 육체적 고통으로 1974년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타계하여 완성된 건축은 보지 못했다. 건축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이 제정되기 전에 서거하여 수상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가 남긴 건축들은 20세기의 최고의 명작으로 남아있다.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