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82>고요한 위엄의 겨울 소나무

입력 2025-01-22 13:44:13

미술사 연구자

이인상(1710-1760),
이인상(1710-1760), '설송도(雪松圖)', 종이에 수묵, 117.4×52.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인상이 그린 눈 속의 소나무 '설송도'는 "문인화란 어떤 그림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다. 문인화는 말 그대로 서재 생활이 일상인 문인(文人)의 그림이라는 뜻이다. 그 특징은 즐겨 다루는 소재에서 먼저 드러난다. 문인들은 내 마음속의 어떤 뜻을 그림이라는 가시적인 형상으로 옮겨서 나타낼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한다. 송(松), 죽(竹), 매(梅), 난(蘭), 석(石), 국(菊), 연(蓮), 수선, 파초, 목련, 오동나무 등을 많이 그렸다. 쌍청(雙淸), 삼청(三淸), 세한삼우(歲寒三友), 사군자, 육군자 등으로 묶기도 하듯 그 고유한 생태를 의인화하며 문화적 의미를 역사적으로 누적시켜온 대상이다.

이인상은 한겨울의 소나무를 그렸고 바위를 곁들였다. 겨울이 찾아온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 것을 안다고 한 공자님 말씀이 소나무의 대표적 상징으로 떠오른다. 두 그루 소나무가 온통 냉랭한 백설을 이고 서있어 그 기상이 더욱 돋보인다. 늠름함과 굳셈이 이인상이 이 그림을 그린 뜻이다.

둘째는 어떻게 그리느냐의 문제다. 그림은 원래 사람이든, 사물이든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러나 일찍이 중국의 소동파는 '논화이형사(論畵以形似) 견여아동린(見與兒童鄰)', 곧 닮게 그렸느냐 아니냐하는 관점에서 그림의 우열을 논한다면 그건 유치한 수준일 뿐이라고 했다. 회화의 목적은 묘사의 기술이 아니라 참새를 그린다면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생생함이, 꽃이라면 그 꽃만의 꽃다움이 전해져야한다는 것이다. 형태의 닮음인 '형사(形似)'가 아니라 대상의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신사(神似)'가 회화의 진정한 의의라는 회화론이 문인화론이다.

묘사하지 않고 어떻게 소나무를 그리나? 문인은 원래 각자 나름의 개성으로 붓을 사용하므로 문방구이자 화구인 지필묵을 다루는 익숙함과 글씨를 쓰는 필력으로 그림을 그린다. 서예적인 필법과 묵법으로 글씨를 쓰듯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문인화의 방식이다. 그래서 난초그림을 화란(畵蘭)이 아니라 사란(寫蘭)이라고 했고, 그리는 게 아니라 친다고 했다.

이인상의 '설송도'는 예서, 전서를 쓰는 필의(筆意)로 그린 그림이다. 김정희는 그 맛을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라고 했다. 이런 지적인 그림, 고상한 그림은 그리기도, 감상하기도 쉽지 않다.

성삼문은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읊었다.

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어 있어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셋째는 이런 독야청청의 결기가 마음속에 있어야 제대로 그릴 수 있는 그림이 문인화다. 이인상의 '설송도'는 그런 그림이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