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황영은] 가고 있는 중이에요

입력 2025-01-23 14:00:22 수정 2025-01-23 18:15:25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황영은 소설가

"어디쯤이고? 어디까지 왔노?"

명절이 다가오면 괜스레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롱대는 듯하다. 연휴가 시작되는 날, 아침 댓바람부터 어디쯤 오고 있냐고,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던 할아버지. 이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그 목소리가, 설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또 알람처럼 머릿속을 파고든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 잦아지는 일이라고 했던 한 소설가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이 맞았다. 내 가족의 죽음은 우주에서 결코 일어나지도,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인 줄만 알았다. 연달아 할아버지, 할머니를 한 해 간격으로 잃고 나니 마치 온 세상이 거대한 싱크홀로 변신하여 바닥도 가늠할 수 없는 구렁텅이 속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애달픈 마음은 꽤 사그라들었지만, 설을 앞두고 명절날 세상에서 손녀를 가장 애타게 기다리던 할아버지의 마음이 떠올라 가슴이 서늘해져 온다.

대학 입학 때문에 도회지로 나와야 하는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러니까 우리 식구는 7명, 대가족이었다. 난 유달리 할아버지와 친했고, "은아!"하고 불러서 쪼르르 달려가면 곧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인데도 된장 덩이인 줄 알고 강에서 둥실둥실 떠내려오는 똥 덩어리를 건져내는 대목에서는 매번 까르르 웃어 넘어갔다. 이맘때쯤이면 싸리 나뭇가지를 꺾어와 한지로 가오리연을 만들어주셨다. 때로는 같이 서예를 하기도 했다. 한자에 능했던 할아버지의 취미는 붓으로 논어나 도덕경을 옮겨적는 일이었으므로 그 방에는 늘 한지가 수북했다.

세월이 흘러 할아버지는 방 안에 누워 있는 날들이 그렇지 못한 날들보다 더 많게 됐다. 시골집에 들른 날이면 할아버지 방부터 냅다 뛰어 들어가 거북이 등짝처럼 불룩한 배를 쓰다듬었다. 쪽파나 배추로 전을 굽고 소주도 한 병 척 올린 개다리소반을 들고 들어갈라치면 당신의 얼굴은 보름달만큼이나 환해졌었다.

그는 나의 늙고 귀여운 애인이었고, 배불뚝이 술친구였다.

거동이 더 불편해지면서 당신의 큰 낙은 명절날 나를, 자손을 기다리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간절함을 모르는 건 아니었으나 이따금 성가시다고 할아버지에게 핀잔을 주기도 했다. 때가 되면 걸려 오던 전화가 영영 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 아무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재촉하던 마음 뒤에 숨겨진 애틋함을 모른척한 데 대한 대가였다. 평생 데리고 가야 할 그리움이었다.

남겨진 사람은 사랑 받은 기억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명절날 모여드는 불빛처럼 당신이 주었던 사랑이 내 안에 소복하다. 며칠 뒤면, 더 이상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손에 쥐고서 시골집으로 갈 것이다.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빈 방으로도 가고, 언젠가 당신이 있는 그곳으로도 갈 것이다.

어디쯤 왔냐는 채근에 이제야 살가운 목소리로 대답해 본다.

"할아버지, 가고 있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