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태진] 이변(異變)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25-01-19 17:31:24 수정 2025-01-19 19:45:38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전을 '이변(異變)'으로 받아들인 건 일본 국민뿐이었다. 패망의 신호음은 1943년부터 지속적으로 울렸다. 일왕의 무조건 항복 선언이 있은 1945년 8월 15일까지 2년 동안 일본 국민들은 제대로 된 전황을 듣기 어려웠다. 언론, 특히 신문은 정부의 통제 아래 있었다. 국민적 단결을 강조했던 일본 언론이었다.

일본군의 활약상은 눈부시게 보도됐다. 1944년 10월 필리핀 레이테만(灣) 전투에 등장한 가미카제(神風)의 자살 공격마저 신성한 전술로 포장했던 일본 언론은 희망찬 전황만을 전했다. 1945년 3월부터 120차례 넘게 이어진 미 공군의 도쿄 대공습으로 일상이 흔들렸지만 언론의 보도 태도는 여전했다.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15일 히로히토 일왕이 항복을 선언한 지 나흘이 지난 19일에야 폐허가 된 히로시마의 '진짜 모습'이 전국적으로 공개됐다.

학교폭력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은 간혹 사건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아이를 잘 모르는 학부모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며 안타까워한다. 사건을 수임하면 "우리 아이가 피해자"라는 정황을 듣고 시작하는데 학교 측 설명과 주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학부모 앞에서 직업적 고충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라고 한다. 진실은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수나 배우의 팬클럽이나 정치인 지지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별처럼 빛나는 나의 우상에 대한 공격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반대 세력은 거악(巨惡)이며 척결할 대상이 된다. 반대 세력을 다룬 기사에 악의적 댓글을 다는 건 정당한 훈계(訓戒)의 기능을 한다고 착각한다.

여론조사 결과 분석 자세도 그렇다. 탄핵 정국에 국민의힘 지지율이 조금씩 오르는 여론조사를 두고 "질문이 잘못됐다"는 풀이가 일각에서 나왔다. 역으로 지난해 총선을 코앞에 두고 '여론조사꽃'이 내놓은 총선 판도를 국민의힘 지지층은 믿지 않았다. '이변'은 설명하기 힘든 걸 단박에 정리해 주는 마법의 단어다. 부작용이 있다. 반복해서 쓰면 진실과 멀어진다. 마주하기 싫겠지만 마주해야 해답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