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일 경북대 교수회 의장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청구가 기각됐다. 대통령 박근혜는 파면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떻게 될까?
작년 12월 10일 온라인 베팅 사이트 '칼쉬'에 다음과 같은 베팅 장이 열렸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2025년 4월 1일 전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인가?" 금년 1월 19일 오후 8시 현재 'YES'가 81센트, 'NO'는 21센트다. 이 가격을 바탕으로 계산한 윤 대통령 탄핵 확률은 79%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대통령 탄핵을 결정한다. 재판관은 판사다.
청구 사유에 따라 탄핵이 결정된다는 것이 통설(通說)이다. 대통령은 중대한 헌법 위반이 있어야 탄핵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의 공무원 중립 의무 위반은 중대한 사안이 아니었다.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아서 대통령 박근혜는 파면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청구 사유는 위헌적인 비상계엄 선포다.
이 통설의 바탕에는 판사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다. 판사는 공평무사(公平無私)하다는 '믿음' 말이다. 판사 개인의 성장 배경, 세계관, 계급적 이해에 오염되지 않은 무균(無菌) 판결은 가능한가? 헌법재판소는 특이한 방식으로 구성된다.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가 각각 재판관 3명을 추천한다.
재판관들이 누구의 추천으로 임명됐는지를 보면 대통령 탄핵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이설(異說)이 있다. 이는 재판관의 정치적 배경이 탄핵을 결정한다는 생각이다. 재판관 8명 중에서 문재인 대통령, 김명수 대법원장, 더불어민주당이 5명을 추천했고, 윤석열 대통령, 조희대 대법원장, 국민의힘은 3명을 추천했다. 재판관이 자신을 추천한 당파(黨派)에 충성한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모름지기 화장실 가기 전과 후는 다르다.
재판관의 정치적 성향이 탄핵을 결정할 수 있다. 보수적인 재판관은 윤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고, 진보적인 재판관은 탄핵에 찬성한다는 논리다. 판결에 판사의 정치적 성향이 나타난다. 재판관 A는 삼성전자 회장을 집행유예로 감형했으니 보수적이다. 재판관 B는 여성,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보였으니 진보적이다. 이 논리를 따르면 '중도' 또는 '보수' 재판관이 5명, '진보' 재판관은 3명이라고 한다. 문제는 대통령 탄핵이 다른 사건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재판관들이 처음 경험하는 사건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은 '정치 재판'이라서 여론조사 결과가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 말이 맞는다면, 국민 다수가 대통령 탄핵을 원하면 재판관은 거기에 따른다. 금년 1월 17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윤 대통령 탄핵 찬성이 57%, 반대는 36%다. 헌법재판소가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했지만 믿기 어렵다. 내가 아는 한 판사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자기 생각대로 간다.
판사를 '사법 노동자'로 봐야 한다. 판사도 일을 덜 하면서 많은 돈을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들의 '효용함수'에는 다른 요소가 있다. 판사의 매력은 '존중(尊重)'이다. 판사는 의뢰인에게 굽실거리지 않아도 된다. 변호사가 판사에게 굽실거린다. 또한 이들은 '좋은' 판사가 되고 싶어 한다. 자신에 대한 평판(評判)이 중요하다. 그래서 동료, 언론, 정치권 평가에 민감하다.
'판결문 쓰기'는 '소설 쓰기'와 비슷하다. 소설가가 어떤 문장을 쓴 이유는 그 문장이 적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판사의 추론(推論)도 직관적(直觀的)이다. 사실 '직관'은 선입견(先入見)이다. 통계학에서는 선입견을 '사전적 확률'이라고 한다.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판사의 '사전적 확률'은 수정된다. 재판이 끝날 때 판사는 자기만의 '사후적 확률'을 갖는다. 이런 까닭에 판결은 '주관적 확률'에 불과하다.
20세기 최고의 법경제학자로 불리는 리처드 포스너(Richard Posner)는 '판결문 쓰기'와 '소설 쓰기'의 공통점을 "잘 짜인 구조와 상상의 혼합, 옛 것을 새 것으로 바꾸기, 지루한 것 쳐내기, 극적인 대사(臺詞)"라고 했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판결문은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 증명이나 실험으로 판결문을 평가할 수 없다.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0개국을 대상으로 법원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가 있다. 우리나라는 33.5%로 28위다. 27위 이탈리아는 42.5%다. 우리나라와 9%포인트(p) 차이가 난다. 29위 콜롬비아는 우리나라와 거의 같은 32.9%다.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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