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소식이 잊고 지낸 상흔(傷痕)을 헤집어 놨다. 처참한 사고 장면, 정부 세종청사에서 1시간마다 진행된 항공 당국의 브리핑은 한쪽에 있던 지난 기억과 포개졌다. 2014년 4월 17일 밤 진도 팽목항에서 "우리 아이가 차가운 물속에 있어요. 1분 1초라도 빨리 구조해 주세요"라며 무릎 꿇고 울부짖던 여인의 모습이 아른거렸고, 그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했다. 23일 낮 진도실내체육관 게시판에 시신 인상착의와 특징을 정리한 A4 종이 131번(인양 순서)에 눈길이 멈춘 채 잠시 넋이 나갔던 여성도 떠올랐다. 그때 그녀는 "다른 특징은 비슷한데 반지랑 시계가 아니야. 일단 현장 가봐야겠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가족의 애끊는 심경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참사 현장은 기자에게도 고통이다. 그래서 비극적 사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슬픔이 다시 없기를 바라건만 매번 우리는 허술하기만 하다. 1년 전 경북 문경 화재 현장에서 인명 검색과 구조에 나섰던 김수광·박수훈 두 소방관을 잃었던 날처럼 아픔은 늘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 성장한다. 그래서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슬프기만 한 일도 없고. 이번에도 국내 항공 안전 체계 전반에 대한 재검토 필요성이 대두했다. 방위각 시설의 콘크리트 기반 구조물이 논란의 중심에 서자 국토교통부는 전국 공항 시설 전반에 대한 설계, 안전 기준 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설계 당시 기준이 현대 안전 요구에 맞는지, 국제적 사례와 비교해 적정한 설계였는지 검토한다.
같은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은 가상하다. 하지만 이를 악용하려는 모습은 불측(不測)하다. 애통하던 연말에 대구의 지인은 "이번 사고를 지방공항 역량 부족으로 몰아가는 댓글도 있던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방공항을 비하하는 데 혈안이 된 수도권론자들은 이번에도 지방공항 회의론에 불을 붙였다. 단골 레퍼토리인 '정치 공항', '포퓰리즘', '고추 말리는 공항' 등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서울공화국', '수도민국'을 대변하는 서울 언론은 "지방공항의 적자는 안전성으로 연결된다"며 기다렸다는 듯 깎아내린다. 심지어 "전국엔 제2, 제3의 무안공항들이 줄을 서고 있다"며 특별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대구경북신공항 사업마저 "지역의 숙원으로 포장돼 졸속 추진되고 있다"고 시비 건다.
중국 전국시대 이야기를 엮은 '전국책'에 '증삼살인'(曾參殺人) 이야기가 나온다. 증삼은 공자의 제자로 뛰어난 인품과 학식으로 후에 증자(曾子)라 불렸다. 증자의 어머니는 증삼이 사람을 죽였다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과 두 번째는 믿지 않았는데 세 번째 같은 말을 듣자 두려워 담을 넘어 달아났다. 어머니의 신뢰에도 세 사람이 입을 모으니 끝내 아들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비슷한 사자성어로 '삼인성호'(三人成虎)가 있다. 시장통에 호랑이가 나타날 리 없건만 세 사람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니 믿지 않던 사람도 결국 혼비백산해 달아났다는 말이다. 두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틀린 말도, 헛소문도 계속되면 믿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수도권이 아무리 거대하다 해도 아직 지방에는 2천만 명이 넘는 국민이 살고 있다. 수도권에만 제대로 된 공항, 철도,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은 '지방=내부식민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대한민국 모든 공항의 안전성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증삼살인에 기대 여론을 호도할 때가 아니다. 지난 연말 비통함 가운데 쓰라린 교훈을 얻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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