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주주의 역사를 40년 이상 후퇴시킨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후 주목받는 인물 중 하나는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우 의장은 혼란스러운 비상계엄 직후 기민하고 침착한 대응으로 빛났다. 67세의 나이에 국회 담을 뛰어넘었고, 체포 우려 속에도 계엄 해제 의결을 절차적 흠결 없이 이끌어 내면서 불필요한 시비를 차단했다. 이후 야당의 유력 대권주자 중 하나로 거론되는 등 정치적 중량감도 키우고 있다.
기실 삼부 요인이자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중량감을 논하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다.
국회의장은 외부에 대해 국회를 대표하며 이 밖에 국회의 의사정리권, 질서유지권, 사무감독권 등 막강한 권한을 사실상 독점한다. 2명의 부의장 중 1명이 이런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때는 '사고로 의장이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정도다.
권한만큼 책임도 큰 국회의장의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들도 국회법에 마련돼 있다.
국회의장은 재임 기간 동안 원칙적으로 당적 보유가 금지된다. 의장의 중립성을 보장하고자 16대 국회에서 만들어진 규정이다.
의장의 직을 임기제로 하고 있는 점 역시 의장이 중립적으로 국회 운영에 임할 수 있게 보호하는 장치로 꼽힌다. 국회에서 불신임 혹은 사임 권고 결의는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도 의장이 직을 사임해야 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관례상으로도 고령에 5선 이상의 다선 의원이 의장을 맡는 것 역시 임기 후 정치적 미래를 꿈꾸기보다 충실한 중재자로 활약하길 기대하는 심리가 반영됐다는 풀이가 나온다.
그러나 중재자로서의 우 의장은 아직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우 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 의결정족수로 보통의 국무총리처럼 151석이면 된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의견을 수용했다.
한 총리의 뒤를 이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3인 중 2명만 임명, 여야 모두의 입장을 고려한 결단을 내렸을 때도 우 의장은 오히려 이에 대해 권한쟁의심판과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
계엄 사태 이후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22대 국회는 우 의장을 선출한 6월 5일 첫 본회의부터 '반쪽 국회'로 출발했다. 여당이 불참한 채 야당 단독으로 국회가 개원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불명예였다.
이어진 상임위원장 배분에서마저 중재의 묘를 발휘하지 못했다. 원내 2당이 관례적으로 맡던 법사위원장,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등 이유로 여당이 맡던 운영위원장 자리를 모두 민주당이 가져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달 10일에는 야당 단독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우 의장이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본회의 상정을 약 일주일 늦추긴 했으나, 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된 감액 예산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건 헌정사상 최초였다.
개원한 지 반년이 겨우 지난 22대 국회가 이미 '민주화 이후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데에는 중재자로서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한 우 의장 역시 책임이 가볍지 않다. 그를 두고 "민주당 대변인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여당 의원들의 성토에는 뼈가 있다.
우 의장은 지난해 6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합의를 못 하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정치 불신'의 핵심"이라며 "'삼권분립'의 가치와 국회 권위를 제대로 세우는 게 의장의 역할"이라고 답했다. 아직 임기가 한참 남은 그가 앞서 했던 말을 다시 되돌아본다면 더 훌륭한 국회의장으로 기억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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