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수용] 조용한 초개인화(超個人化)

입력 2025-01-14 20:28:37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들의 시대가 오고 있다. '조용하다'는 '말이나 행동, 성격 따위가 수선스럽지 않고 매우 얌전하다'는 뜻이다. 적극적·외향적·주도적 성격의 역할은 극히 소수로 수렴(收斂)할 것이다. 집단적 목소리는 개인적 취향들로 대체되고, 급기야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의 시대로 옮겨 가게 된다. 이런 흐름은 오래전부터 조용히 진행돼 왔다. 우선 공유된 경험이 매우 드물어졌다.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으로 영상, 음악, 텍스트를 망라한 콘텐츠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면서 '초대박'이 아니면 감상 경험을 공유하기 어렵게 됐다. 고도성장을 이끈 산업화 시대가 저물고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집단주의는 개인주의로 대체되고 있다. 얼굴을 맞대고 열띤 토론을 벌이며 의견을 내는 문화는 사라지고 초연결 시대의 인공지능(AI), 스마트폰, 컴퓨터가 조용하게 사람들을 이어 준다.

조용함이 트렌드가 되면서 소비, 패션, 생활, 문화까지 바꾸고 있다. '내향성 경제(Introvert Economy)' 시대에 사람들은 집 안에 은둔한다. 하루 종일 안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다. 재미와 인간관계, 먹는 문제까지 해결된다. 대인관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내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여행지 대신 자연과의 교감과 사색이 가능한 외딴곳을 애써 찾고, 취향에 맞춘 소도시를 선호한다. 얌전하고 조용하다는 뜻의 '드뮤어(demure)'가 패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특히 AI는 내향성과 소극성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멋진 도구가 될 수 있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홀로 외국어를 배울 수 있다. 복잡한 문제 해결뿐 아니라 창의성, 분석력이 필요한 분야에서 AI는 강력한 조력자가 된다. 굳이 동료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된다. 부족한 사회성 탓에 더 이상 불이익을 받을 필요가 없다. 통계에 매몰(埋沒)되지 않고 개인의 감정과 취향, 심지어 표정까지 읽어내 적확(的確)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초개인화 시대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기업들은 적응을 위한 잰걸음을 내딛고 있지만 사회는 굼뜨기만 하다. 조용한 초개인화는 이질적 목소리들의 불협화음이 아니다. 그동안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진정성의 표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