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새해 불경기 가속화…물가 올라가자 소비심리 '꽁꽁'

입력 2025-01-02 18:30:00

소상공인, 고물가·고환율 영향 피해 극심
계엄령·제주공항 참사 등으로 소비심리도 얼어붙어
동성로·서문시장 등 활력 잃은 대구 상권

2일 정오쯤 찾은 대구 동성로는 새해가 무색할 정도로 한산한 모습을 띄었다. 박성현 기자
2일 정오쯤 찾은 대구 동성로는 새해가 무색할 정도로 한산한 모습을 띄었다. 박성현 기자

2025년 을사년이 밝았지만 경제 최전선에 있는 소상공인들의 낯빛에는 어둠이 계속되고 있다. 이들은 고물가, 고환율 영향으로 경기가 극도로 침체돼가는 것이 하루하루 피부에 와닿는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계엄령 선포에 이은 정치 혼란, 제주공항 참사 등으로 소비심리가 더욱 얼어붙었다고 강조했다.

◆침울한 동성로…경기 침체 직격

2일 정오쯤 대구 동성로에는 활기보단 시름이 가득해 보였다. 옷 가게와 미용실, 안경점 등에는 수험생 할인을 알리는 문구보다 '임대', '점포정리'라고 적힌 현수막이 덕지덕지 걸려있었고, 문을 연 가게 안에도 손님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성로 야시골목에서 옷 가게를 운영 중인 김모(45) 씨의 표정도 어둡긴 마찬가지였다. 박리다매 전략을 펼치고 있는 그의 가게는 평일에도 50~100명의 손님이 들락거렸지만 최근에는 30명도 구경하기 힘든 상태다.

그는 "여전히 동성로 상권은 다른 곳에 비해 임대료가 4배나 차이 날 정도로 값이 비싸지만 실제 장사는 그렇지 못하다. 이 정도 매출이면 오히려 작은 동네 상권으로 들어가 임대료라도 낮추는 게 나을 것"이라며 "코로나19 때는 물론이고 지난달 3일 계엄령 이전과 비교했을 때도 요새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울상을 지었다.

대구 동성로 야시골목에 위치한 한 옷 가게. 박성현 기자
대구 동성로 야시골목에 위치한 한 옷 가게. 박성현 기자

프랜차이즈 매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동성로에 위치한 유명 SPA(제조·유통 일괄)브랜드에서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날마다 목표매출을 세우고 있지만 달성한 적이 거의 없다. 특히 평일 같은 경우엔 주말의 반밖에 직원을 쓰지 않지만 적자가 계속되고 있다"며 "동성로라는 상징성 탓에 매장이 계속 운영되고 있지만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88.4로 지난달보다 12.3포인트나 급락했다. 낙폭은 코로나19가 확산하던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지수 역시 2022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지수가 100보다 높으면 소비자의 기대 심리가 장기평균과 비교해 낙관적이고, 100을 밑돌면 비관적이라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수능을 치고 올해 성인이 됐다는 최모(18) 씨는 "막상 시내를 다녀도 수험생 할인 행사를 하는 곳이 잘 없는 것 같다. 사고 싶은 물건이 많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럽다"며 "성인이 된 만큼 용돈을 타 쓰기보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직접 돈을 벌고 싶지만 마땅한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다"고 했다.

2일 오후 1시쯤 찾은 대구 서문시장. 점심시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음에도 국수와 어묵, 순대 등을 파는 노점상에는 빈자리가 그득했다. 박성현 기자
2일 오후 1시쯤 찾은 대구 서문시장. 점심시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음에도 국수와 어묵, 순대 등을 파는 노점상에는 빈자리가 그득했다. 박성현 기자

◆북적거림 잃어버린 서문시장

대구 대표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에서도 특유의 북적거림은 느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음에도 국수와 어묵, 순대 등을 파는 노점상에는 빈자리가 그득했고, 골목 곳곳에 위치한 점포에도 가게를 지키는 주인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묵을 판매하고 있던 한 상인은 "옛날에 다른 지역 사람들이 서문시장에 오면 '이렇게 사람이 몰려있는 건 처음 본다'고 할 정도로 북적거리는 분위기가 있었다. 연초에 이 정도면 앞으로는 더 한산할 것"이라며 "시장에 오는 사람들도 1개 천원 하는 호떡만 사 먹지 다른 건 거들떠도 안 본다"고 했다.

환율이 연일 오름세를 기록하는 데다 제조사들이 원가마저 올리자 시장의 도·소매 업체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가뜩이나 물건 판매가 안 돼 재고품이 넘쳐나는 상황에 가격을 올릴 수가 없어 마진율만 자꾸 낮아진다는 것이다.

국세청 국세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3년 폐업 신고를 한 사업자는 98만6천487명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가장 많았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지원하는 노란우산 폐업 공제금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1조3천19억원이 지급돼 역대 최대를 기록한 만큼 향후 폐업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서문시장에서 생활용품과 문구류 등을 판매하는 신모(68) 씨는 "떼오는 가격은 점점 비싸지는데 파는 가격은 그대로다. 손해가 극심하지만 이제 와서 다른 걸 할 수도 없고, 결국 버텨야 한다"며 "종종 들어오는 손님들도 물건만 만지작거리다 나가는 경우가 많다. 소상공인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나라가 안정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