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2·3 비상계엄 이후 나라가 준내전 상태에 빠졌다. 헌법에 따라 한 몸같이 움직여야 할 국가가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초유의 사태다. 지난 3일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려는 과정에서 그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법질서를 수호하는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수처와 맞섰다. 법질서가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공수처의 행위는 불법이다. 내란죄 수사권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내란이나 외환의 죄 외에는 재직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내란죄 수사권은 경찰에 있다. 공수처만 아니라 군과 경찰도 법을 따르지 않았다. 경호처의 지휘를 받으며 대통령 관저 외곽을 방어하는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단, 경찰 202경비단이 경호처 지시에 불복했다. 국방부와 경찰 수뇌부는 공수처의 지시에 따랐다.
그런 이유가 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실질적 정부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아무 정부 기관이나 멋대로 '최후 통첩'을 발하고 있다. 윤종군 원내대변인은 지난 5일 "체포영장 집행 시한(1월 6일) 내에 공수처 조직의 명운을 걸고 체포영장을 재집행하라. 재집행하지 않으면 정치적,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고 겁박했다.
이미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내란·김건희 특검법' 공포를 하지 않으면 "즉시 책임을 묻겠다"고 위협하고, 이에 불복하자 즉시 탄핵한 바 있다. 지금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윤 대통령 체포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으른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말대로 "탄핵이라는 칼을 목에 들이대고서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찌르겠다는 '탄핵 인질극'"이다.
정부만 혼란에 빠진 게 아니다. 가장 심각한 건 국민의 분열이다. 친윤‧반윤 시위대가 대통령 관저 앞에서 대치하며 서로 "너네들 다 죽일 거야"라고 외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보낸 편지가 타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대치 상황을 체제 수호 투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에 호응한 한 친윤 유튜버는 "100리터 휘발유가 든 드럼통에 심지를 박고 불을 붙여 굴려서 하나가 폭발하면 반경 30미터는 불바다가 된다"고 했다. 반윤 시위대 '전봉준 투쟁단'은 얼마 전 트랙터 13대를 몰고 관저 인근까지 행진했다. 그리고 "130년 전 패했던 우금치 전투와는 달리 남태령 전투에서 동학 트랙터 농민군과 시민연합군이 어우러져 승리"했다고 자축했다. 이 시위를 일종의 혁명 또는 전쟁으로 보는 것이다.
이 증오가 총을 든 내전으로 번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6·25전쟁 때 국민의 10%인 300여만 명이 희생됐다. 군인만 싸운 게 아니다. 작은 마을에서도 학살극이 벌어졌다. 전라도 진도의 어떤 마을은 약 600명의 인구 중 167명이 희생됐다. 110명은 좌익, 20명은 우익에 의해 죽고, 37명은 게릴라로 입산했다.('마을로 간 한국전쟁') 동족의 피가 산하를 적셨다.
정치적 양극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3년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2%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결혼을 할 수 없고, 33%는 술자리도 같이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민이 데마고그(자파<自派>의 이익을 위하여 근거 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연설가)의 선동에 휘둘리면 큰 비극이 일어난다.
아내 문제로 공정성을 잃은 데다 어설픈 비상계엄으로 국가를 수렁에 빠트린 윤 대통령,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면하고자 탄핵과 입법 폭주로 국가를 마비시킨 이재명 민주당 대표, 둘 다 더 이상 국가 지도자가 아니다. 국민은 냉정을 되찾고 정치가가 아닌 나라를 지켜야 한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탄핵당하고 있다. 10년도 안 되어 당명이 세 번 바뀌고, 윤석열 정부 들어 5번째 비상대책위원회가 등장했다. 보수가 살고 나라를 구하려면 낙동강 정당, 영남 자민련을 탈피해야 한다. 각고의 혁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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