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석의 동물병원 24시] 고양이 천국의 고양이 전용 아파트

입력 2025-01-01 13:07:17 수정 2025-01-01 18:09:21

韓, 반려묘 대한 선입견 높은 현실…주택 임대 시 집주인·임차인 갈등
고양이에 관대 日도 같은 고민 多

고양이 발톱.사진출처 Image by Freepik
고양이 발톱.사진출처 Image by Freepik

여행을 하다보면 일본, 미국, 유럽, 태국, 터키 등 거리의 고양이들이 유난히 평화로워 보인다. 한국의 길고양이가 숨어지내기 급급한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고양이에 대한 국민 정서가 여전히 각박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우리나라도 세대가 젊을수록 고양이를 좋아하는 경향이 확산되다 보니,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기성 세대와의 갈등을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나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만난다면 갈등은 더 심각해진다.

◆ 고양이 집사와 임대인과의 갈등

얼마 전 친한 후배와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 먹는 자리가 있었다. 그의 큰 딸이 최근에 서울에 직장을 얻어서 집을 구하고 있는데 좀처럼 원룸을 구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비싼 월세 때문인 줄 알았는데 집주인들이 한결같이 고양이를 키우면 안된다며 거절을 했다는 것이다. 후배의 딸은 고양이를 집에 놔두고는 서울로 갈 수 없다며 아직도 집을 구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했다.

사실 내 집에서 반려견 반려묘를 키우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세입자의 입장에서는 반려 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 개는 되지만 고양이는 안된다는 곳도 있어서 집사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는 경우가 흔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는 벽지나 방문 등 집안 곳곳을 발톱으로 긁어서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소파.사진출처 Image by Freepik
고양이와 소파.사진출처 Image by Freepik

대체 고양이는 왜 발톱으로 긁어댈까? 첫번째 이유는 길어진 발톱을 관리하기 위해서다. 야생 고양이들은 거친 땅바닥을 달리거나 나무 또는 벽을 타고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발톱이 정리가 되지만 집고양이들은 환경이 다르니까 발톱을 관리해 주어야 한다.

두번째는 영역 표시 본능 때문이다. 개들이 소변을 통해 영역을 표시하듯이 고양이는 집안 곳곳을 긁어 자기 냄새를 묻힌 다음 자신의 영역을 마킹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을 고양이가 내 집에서 한다면 조금 속상하면 될 일이지만 액자를 걸려고 벽에 못을 하나 치는 행동도 집주인의 허락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임대 주택인 경우는 불가능이다.

아이노시마,로이터통신
아이노시마,로이터통신

◆일본은 '고양이 천국'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고양이 천국'이다.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같이 고양이가 주인공인 콘텐츠는 무궁무진하고 고양이를 테마로 한 카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이전부터 발달해왔다.

뿐만아니라 일본에는 사람보다 고양이 수가 더 많은, 그야말로 고양이 천국이라 불리는 섬이 꽤 많이 있다. 가나가와현 에노시마, 후쿠야마현 마나베시마, 에히메현 아오시마 등은 고양이 덕후들이 손꼽는 장소이다. 그 중에서도 후쿠오카현 아이노시마는 2013년 CNN에서 선정한 '세계 6대 고양이 명소'로 유명해진 곳이다.

과거 어업에 피해를 주었던 쥐를 잡기위해 어민들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섬마을 사람들 수보다 고양이가 더 많아졌다. 이곳의 고양이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관광객들이 선착장에 도착하면 어슬렁 어슬렁 고양이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한 번 방문하고 떠날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낭만적이겠지만 조금만 더 주의깊게 살펴보면 문제점이 금방 드러나게 된다. 늘어난 고양이의 배설물로 섬은 차츰 오염되고 있다. 문제는 개체 수 증가뿐 만이 아니다. 외부 관광객의 왕래가 잦다 보니 여러 가지 질병이 유입되어 고양이들의 건강 문제도 악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외부인은 간식이나 사료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규칙을 만들어 두었지만 역부족이다.

아이노시마,로이터통신
아이노시마,로이터통신

◆고양이와 사는것은 어려워

고양이 천국 일본에서도 세입자가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애완 동물이 가능한 임대 물건 수 자체가 적다. 그리고 애완 동물이 가능한 곳은 보증금이 2배나 3배 정도 많고 집을 청소하는 클리닝 요금이 따로 부과된다. 게다가 이런 임대 물건의 경우는 역에서 꽤 먼 거리에 위치해있다. 그나마 애완 동물이 허용되는 곳이라 하더라도 야외 활동이 많은 개는 좋지만 집에서만 지내는 고양이는 안된다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미즈노 나오코 씨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고양이가 있는 집에서 살았는데 대부분 가족들이 주워 온 유기묘이거나 이웃들로부터 분양을 받은 녀석들이었다. 때로는 길고양이가 정원에 와서 밥을 먹으러 온 김에 집 안에서 낮잠을 자고 가기도 해서 집은 늘 고양이로 가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즈노 나오코 씨가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취를 시작하려 했을 때 '고양이와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처음 깨닫게 되었다. 처음 실내에서 기른 고양이는 귀엽긴 하지만 지금까지 기른 어떤 고양이보다 활동적이어서 거의 망나니를 연상케 할 만큼 집 안 곳곳을 파괴하고 다녔다.

벽지는 밑바탕이 보일 정도로 긁혀서 너덜너덜해졌고 장지문도 찢어졌을 뿐 아니라 마룻바닥은 칠이 벗겨지고 상처투성이가 돼 버렸다. 설마 설마했는데 옷장 안에서 놀고 싶은 고양이는 마침내 옷장을 여는 방법을 습득하고는 가지고 있던 옷이 고양이 털투성이가 되거나 조각조각 나 버린 일도 생겼다.

캣카사
캣카사

◆고양이 전용 아파트 'Cat Casa 기요세'

그 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아파트에 빈 방 하나가 나왔을 때 미즈노 나오코 씨는 '그 방을 고양이를 기르거나 앞으로 키우고 싶은 사람을 위한 방을 만들자! 그러다 차츰 나머지 방들도 모두 고양이 전용 아파트로 개조해서 고양이를 좋아하는 입주자끼리 모여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부재 중일 때는 서로 캣시터를 할 수 있는 그런 소셜 아파트먼트를 만들자.'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도쿄도 기요세시에 있는 고양이 전용 아파트 'Cat Casa 기요세'이다.

'Cat Casa'는 사람도 고양이도 살기 좋은 집이란 고양이가 안전하면서도 즐겁게 살 수 있고 보호자도 집의 인테리어가 고양이의 습성에도 불구하고 파괴되지 않는 곳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단지 인간의 생활 양식만 고려한 곳에 고양이가 얹혀사는 개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캣카사-고양이아파트평면도-사진출처 네코리파부동산
캣카사-고양이아파트평면도-사진출처 네코리파부동산

이 아파트를 한 번 살펴보자. 크기는 8평 정도에 긴 직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마룻 바닥은 고양이의 발톱 자국이 생기지 않을만큼 튼튼하고 청소가 편한 매장용 플로어 타일을 깔았다. 그리고 방 천장쪽에는 전체적으로 캣워크를 깔아서 고양이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2개 이상의 고양이 화장실을 마련하고 숨기를 좋아하는 고양이를 위한 은신처 상자를 설치했다. 수평 운동보다는 높은 곳으로 날아 오르내리는 수직 운동이 필요한 고양이를 위해 캣스텝을 마련해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기에 충분한 넓이를 두었다. 캣워크는 운동회를 열어도 될 정도로 길게 방 전체를 빙 둘러싼 형태로 만들었다.

고양이화장실.사진출처 네코리파부동산
고양이화장실.사진출처 네코리파부동산

특히 고양이의 안전을 위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울타리를 현관문과 베란다쪽에 각각 마련해두었다.지금 이 아파트에는 모두 고양이 집사들이 입주를 했다. 미즈노 나오코씨의 처음 바람대로 1년에 한 두 번 입주자들이 모여 고양이 다과회나 고양이 신년회를 연다. 현재 일본에는 <캣 카사>같은 고양이 전용 아파트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아예 고양이 전용 아파트를 매물로 소개하는 '네코리파부동산'이라는 곳도 있다.

◆집사와 고양이의 행복한 삶을위한 공간

우리 나라에도 고양이와 함께하는 삶을 고민하는 건축가들이 왜 없겠는가?.<가가묘묘-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 (박민지,박지현,조성학 공저 / 공간서가, 2021), 이 책은 반려묘와 지내는 사람들의 일상과 그들의 공간을 들여다 보는 책이다. '비유에스 건축'은 그들에게 설계를 의뢰한 집사들의 이야기와 반려묘 생활에 대한 접근 방식 그리고 설계 디테일을 단행본으로 엮었다.

이제 우리도 고양이와 함께 사는 라이프스타일에서 공간이 주는 의미를 다시 정의해야 할 때가 왔다. 사람이 사는 집에 고양이가 더부살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집사와 고양이 서로가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공간 디자인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순석
박순석

박순석 수의사

SBS TV 동물농장 자문수의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겸임교수

한국수의임상수의사회 부회장

박순석동물메디컬센터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