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진의 전당열전] 여론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국민의힘의 무기력

입력 2025-01-01 14:40:00 수정 2025-01-01 19:12:27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환영 받지 못했다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언행과 운명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비상계엄 선포가 곧 '내란'인가.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하자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내란'으로 규정하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와 고발에 들어갔다. 탄핵과 별개로 전국 거리에 '내란 수괴 윤석열' '내란의 힘' 등 현수막을 내걸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재판도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란 수괴'라고 내질렀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고발'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뿐만이 아니다. 민주당과 친민주당 인사들이 온갖 선동전을 펼쳐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아무 말이나 막 질러도 처벌 걱정이 없으니 마음대로 내지른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현재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만약 국민의힘이 '위증교사범 이재명' '횡령 달인 이재명' 이라는 현수막을 내건다면 민주당은 바로 조치했을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여러 혐의는 재판 중이고,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그가 유죄라고 단정해 표현하면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민주당이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해도 내버려 두나.

자유민주주의 정치에서 여론전은 전쟁에서 총·포를 쏘는 것과 같다. 전쟁에 비유하자면, 민주당은 국제적으로 금지된 생화학 무기까지 사용하는데, 국민의힘은 총·포를 쏘는데도 미온적이다. 사방에 민주당의 선정적 메시지만 난무하니 국민들이 그 쪽으로 기우는 것이다.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 주최로 '주사파 척결! 자유민주주의 수호 광화문 국민혁명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상갓집 개처럼 처량했던 공자

한국에 공자(孔子·기원전 551년 ~ 기원전 479년)사상을 가르치는 곳도 많고, 공자를 본 받으려는 사람들도 많다. 중국도 문화혁명기(1966년~1976년)에는 반동적 사상이라고 비판했지만 지금은 공자를 앞세워 중국을 홍보한다.

너도나도 공자를 높이 평가하지만, 공자는 자신이 살았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에는 찬밥신세였다. 그 시대, 각 지역 군주들의 지상 목표는 생존이었다. 공자, 맹자, 이사, 순자, 한비, 노자, 상앙, 소진, 장의 등 수많은 정치 사상가들이 나타나 각 지역의 군주들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사상과 정책을 설파했다.

군주들은 공자의 덕치(德治), 노자의 무위(無爲)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살아남기(승리하기) 위해 그들은 법가(法家)와 병가(兵家)를 택했다. 군주는 강해야 했고, 병사들은 싸워서 상대를 죽여야 했다. 그런데 덕치라니? 공자는 노(魯)나라에서 잠시 벼슬을 했지만 대부분 군주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떠돌았다. 끝내 군주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그는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다. 공자의 도덕정치가 춘추전국시대에 환영받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상대를 죽이거나 내가 죽어야 하는 시대에 인(仁)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 작금의 한국정치는 내전 상황

춘추전국시대 '군주들'을 오늘날 대한민국에 비유하자면 진영과 지역으로 나뉘어진 '유권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춘추전국시대의 정치 사상가들에 비유할 수 있다. 전국시대 사상가들이 군주의 마음에 들어야 하듯, 오늘날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유권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작금의 한국 정치판은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통령이 되거나 감옥에 가야 할 처지에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래서 이 대표와 민주당은 전국시대의 병가(兵家)처럼 죽기살기로 싸운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길을 찾는 것이다. 여기에 양심이니 도덕 따위는 없다. 포장만 그럴 듯 할 뿐 민주당이 쏟아내는 법안이나 퍼붓는 정치공세는 안면몰수 그 자체다.

이에 대응하는 국민의힘은 공자같은 태도를 취한다. 사람이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다는 식이다. 이재명 대표는 재판을 저토록 집요하게 미루지만,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소추 조차 미루지 못한다. 상대를 두들겨 패기는커녕 상대가 두들겨 패면 '내가 잘못했다'며 물러선다. 민주당이 만들어낸 여론을 '국민의 눈높이'라며 거기에 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런 식이니 맨날 진다. 국민의힘이 물러서면 민주당은 또 다른 꼬투리를 잡아 여론전을 펼치고, 그것이 또 '국민 눈높이'가 되면 또 쇄신하느라 물러서야 하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당내 찬반이 갈려 자중지란(自中之亂)만 일으킬 뿐이다.

▶ 여론에 쫓기는 쪽, 여론을 모는 쪽

흔히 '여론에 따른다'고 하지만 그 의미가 우파와 좌파의 뇌 구조 속에 다르게 세팅 되어 있다. 우파는 말 그대로 '여론에 따른다'고 생각한다. 좌파는 '여론에 따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여론을 만들어 낸다. 애초 자신들이 선전선동으로 만들어낸 여론을 '국민 여론'이라며 수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파는 늘 여론에 쫓겨다니는 모양새고, 좌파는 국민 뜻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파가 여론에 떠밀려 다니는 것은 오랜 세월 대한민국 주류로 있으면서, 현안을 제도와 권력으로 해결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좌파가 여론전에 능한 것은 긴 세월 동안 여론 몰이와 군중 동원 방식 전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력 바깥에 있었던 좌파는 영화, 연극, 문학, 노동, 시민단체, 언론에 파고들어 진지전(陣地戰)을 펼쳤고, 지금은 압도적 우세를 점하고 있다. 광화문에 '탄핵 반대' 인파가 구름처럼 몰려도 언론들이 좀처럼 보도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중민주주의 과잉(過剩) 상태다. 여론이 깡패고, 군대이고, 검찰이고, 경찰이고, 제왕(帝王)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이 2시간 만에 깨지는 것도 여론이 군대 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 우파는 그걸 모른다. 검사가 법으로 사기꾼 도둑놈 잡아 넣듯이 처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비상계엄 한방으로 국체(國體)를 위협하는 세력, 반미·종북주의자들을 척결할 수 있다고 믿으니 깨지는 것이다. "국민들이 거짓 선동에 속고 있다"고만 여길 것이 아니다.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면 늘 패할 뿐이다.

2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촛불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 인근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촛불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