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정 문화부 기자
올 한 해 문화계 곳곳에 경사가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한국 문인 최초를 넘어 아시아 여성 최초 수상으로 한국 문학의 저력을 보여 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특히 이달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그는 시상식에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는 소감을 밝히며 정치가 떨어뜨린 국격을 다시 일으켜 세워 줬다.
사실 'K-문학'의 가능성은 이전부터 예견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문학번역원 자료에 따르면 한강의 2016년 맨부커상 국제 부문 수상을 시작으로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8년여간 한국 작가들은 국제문학상(만화상 포함)에서 31차례 수상했다. 이 중 한강, 김혜순, 편혜영, 손원평, 윤고은, 김초엽, 황보름 등 여성 작가의 수상이 3분의 2를 차지한다는 점도 놀라운 지점이다.
이러한 가능성이 지역에서도 나오려면, 대구 문학의 현 위치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대구는 근대기부터 이상화, 현진건을 비롯해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훌륭한 문인들을 대거 배출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란 문인들이 한데 모이면서 전선 문학의 중심지로 발돋움했다.
오늘날 대구문인협회에 소속된 문인은 1천250여 명 정도이며, 협회에 소속되지 않은 인원까지 더하면 지역에서 대략 4천~5천 명에 달하는 문인들이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은 꾸준한데, 정작 이들은 대구를 두고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는 분위기"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침체되는 분위기의 주요한 원인으로는 지속적으로 감소 중인 대구시의 문학 관련 예산을 꼽을 수 있다. 이주 내로 결정될 대구시의 문인협회 예산은 이미 2년 전에 30%가 한 차례 삭감되고, 작년엔 여기서 20% 삭감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내년도 예산에 대해서도 최소 30%에서 많게는 50%까지 줄어든다는 말까지 돌면서 불안감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역의 한 문인은 "타 지자체에 비해 대구의 상금은 반의반도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며 "다른 문학인들이 월간지 등 작품집을 자기 돈이 아닌 시 보조금으로 낼 때, 대구 문인들은 95%가 자비로 발간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문인들이 모여 서로의 글을 읽으며 담론을 벌일 세미나홀과 같은 공간의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재 지역에 2014년 개관한 공립 문학관인 대구문학관이 있다. 근현대 문학을 중심으로 여러 내실 있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구광역시와 중구청이 소유한 건물의 3·4층만 사용하고 있어 많은 인원이 참여할 땐 협소하다는 공간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문학관 직원들도 대구시에서 보다 의지를 갖고 건물을 증축해 주길 바라고 있지만, 정작 이곳의 예산을 삭감하지 않고 유지된 것만으로 선방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씁쓸한 상황이다. 이마저도 시설관리비와 인건비를 제외하고 나면 사업비로 쓸 수 있는 예산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다시 서론으로 돌아가, 문화계 곳곳에서 있었던 경사들은 곧 국민들의 문화 향유 수준 또한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사람들의 보는 눈은 계속해서 높아지는데, 줄어든 예산은 한번 무너지면 다시 복구되기가 어렵다. 전체 문화 콘텐츠 아래에 여러 갈래가 존재하지만, 문학은 그 모든 갈래들의 토대이자 기초가 되는 장르라고도 볼 수 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을 비롯한 올해의 문학계 성과들을 핑계 삼아 정책적 지원이 활성화되는 기점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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