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조두진] 대통령중심제 버릴 때 됐다

입력 2024-12-23 19:57:02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계기로 개헌론(改憲論)이 확산하고 있다. 현행 '대통령 직선제·5년 단임(單任)'은 1987년 개정한 헌법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87체제'는 한계에 닿았으며 개헌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러 있었다. 몇 차례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돼 대통령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 방안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분단국에 중진국(中進國)인 우리나라는 강력한 대통령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여론과 대권 주자급 정치인들의 미온적인 태도로 '대통령제 폐지'는 추진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중심제에는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강력한 리더십 ▷명확한 책임 소재 ▷입법부에 대통령 불신임권이 없어 정국 안정 ▷의회 다수당의 횡포 견제 ▷임기 동안 일관된 정책 추진 등이 있다. 단점은 ▷권력 집중에 따른 독재 ▷의회를 야당이 장악할 경우 정치적 갈등 심각 ▷탄력적 민의(民意) 반영 어려움 ▷제한된 임기로 장기 정책 추진 어려움 등이 있다.

하지만 대통령제의 장점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발휘되지 않는다. 유력 정치인들과 그 주변 인사들에게 '대통령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탈(爭奪)할 목표가 되었다. 국민들은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낙선(落選)할 경우 5년 내내 분노만 터뜨린다. 승리한 집단은 이익을 나누느라 바쁘고, 패한 집단은 국민 분노를 키우고 대통령 리더십을 흔드느라 혈한(血汗)이다.

국민 절반의 분노를 계속 자극해야 권력을 차지할 수 있는 구조, 대통령이 실패해야 야당이 승리하는 구조 속에서 정치 협력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통령제의 장점인 '강력한 리더십'이 한국에서는 이미 독재(獨裁) 프레임에 갇혔고, 오히려 갈등과 분노, 국민 불행의 원천(源泉)이 되고 있다. 제도 자체가 협치 불가능 상태에 이른 것이다.

'제도(대통령 중심제)'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대통령 개인의 자질)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글쎄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이나 중국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법률이 엉성했던 것은 지혜롭고 인자한 군주가 다스리는 덕치(德治)를 숭상했기 때문이다. 법률로 꼼꼼하게 망(網)을 쳐 두어도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문제들이 많다. 하물며 군주의 현명함과 인자함에 맡겼으니 줄줄 샐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명하고 인자한 군주는 기대만큼 나오지도 않았다. 법과 제도에도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보다 사람에 의존하는 쪽의 위험이 훨씬 크다는 말이다.

대통령중심제의 온갖 부정적 요소만 도드라진 마당에 대통령만 새 인물로 바꾼다고 크게 나아질 것은 없다고 본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정치권력을 획득했음에도 국민 절반은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수많은 범죄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혹시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 상당수는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 엘리트 교체를 넘어 정치 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혁명(革命)이 된다. 대통령만 바꾸는 변화는 쿠데타로 지배 세력만 바뀌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제도를 정비해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을 나누고, 그럼으로써 각 정치세력이 대통령 권력에 올인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지지한 사람이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국민들이 지금처럼 분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한국 정치는 발전하고 국민은 지금보다 덜 싸우고, 더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