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불 보디호러물로 열흘만에 10만명…'서브스턴스' 조용한 흥행

입력 2024-12-22 06:00:00

스릴러 재미·높은 완성도…'외모 강박' 주제에 20·30 여성 공감

영화
영화 '서브스턴스' 속 한 장면. 찬란, 뉴(NEW) 제공

스릴러 영화 '서브스턴스'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보디 호러 장르로는 이례적으로 개봉 열흘 만에 10만 관객을 모으며 영화 팬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가 높은 데다 '외모 강박'이라는 주제가 젊은 여성 관객의 공감을 끌어낸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서브스턴스'는 전날까지 누적 관객 수 약 9만명을 기록했다. 이번 주말 10만명 돌파가 확실시된다.

지난 11일 개봉한 이 영화는 한물간 50대 여성 배우 엘리자베스(데미 무어 분)가 서브스턴스라는 약물을 주사한 뒤 젊고 아름다운 수(마거릿 퀄리)의 몸으로 살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프랑스 여성 감독 코랄리 파르자가 각본을 쓰고 연출도 맡았다. 파르자 감독의 전작이자 장편 데뷔작인 '리벤지'(2017)와 같이 피가 낭자하고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보디 호러물(신체 변형·훼손이 나오는 공포 영화)이다.

성인 여성의 등에서 또 다른 성인 여성이 태어나고, 몸을 굵은 바늘과 실로 꿰매는 등 수위 높은 장면이 이어진다. 특히 후반부 30분은 신체가 기이한 형태로 변형되는 충격적인 비주얼이 나온다. 이 때문에 '서브스턴스'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초청 당시 최고의 화제작이자 문제작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서브스턴스'가 이 같은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흥행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는 스릴러적 재미와 높은 완성도가 첫손에 꼽힌다. 잔인한 장면을 보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할 만큼 매력이 더 크다는 말이다.

이 영화를 수입한 영화사 찬란 관계자는 "전체적인 완성도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화면 디자인, 사운드 등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했을 때 관객들이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 것 같다"면서 "지난 6월 흥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도 비슷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서브스턴스'에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타인을 해하거나 일부러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니어서 관객들이 이를 영화적 허용, 판타지로 받아들이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이 지닌 메시지가 20∼30대 여성 관객에게서 공감을 얻고 온라인상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서브스턴스'는 여성에게 특히 요구되는 '꾸밈 노동'이나 젊음과 아름다움을 지켜내야 한다는 강박을 스릴러 장르를 빌려 보여준 영화"라면서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부는 페미니즘 열풍에 꼭 알맞은 주제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엑스(X·옛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브스턴스'를 보고 외모 강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젊은 수가 늙은 엘리자베스를 공격하고, 엘리자베스가 스스로를 못 견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혐오에 빠진 나를 보는 것 같았다"라거나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던 과거의 내가 생각났다"는 평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일각에서는 '서브스턴스'처럼 주제 의식과 장르가 뚜렷한 영화가 앞으로 더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앞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 '추락의 해부', '가여운 것들', '퍼펙트 데이즈', '악마와의 토크쇼', '장손' 등 다양한 예술 영화도 흥행에 성공한 바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홍보를 많이 하는 블록버스터나 스타 배우를 앞세운 작품들보다도 독특하고 취향에 따라 골라 볼 수 있는 이런 작품들이 내년 극장가 틈새시장에서 흥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