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이상준] 통제할 수 없는 것

입력 2024-12-18 17:11:01 수정 2024-12-18 19:19:56

이상준 사회부·경북부 총괄 부장

4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윤석열심판대구시국회의. 연합뉴스
4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윤석열심판대구시국회의. 연합뉴스
이상준 사회부·경북부 총괄 부장
이상준 사회부·경북부 총괄 부장

1990년대 후반 처음 등장한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는 페이스북, 유튜브, X(옛 트위터) 등과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ocial networking service·SNS)에 가입한 이용자들이 서로의 정보와 의견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정의된다.

글로벌 소셜 미디어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월 기준 전 세계 인구의 56.8%, 약 44억8천만 명이 소셜 미디어를 활발히 이용하고 있다. 페이스북은 역사상 최초로 '활성 사용자' 수가 10억 명을 돌파한 SNS로, 현재는 30억 명이 넘는다. 2위 유튜브는 20억 명을 웃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그날 밤, 계엄사령부로 전환한 군은 6개항으로 구성된 포고령 제1호를 발동했다. 이 포고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거나, 전복을 기도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며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 명시했다.

21세기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모든 언론을 통제하겠다니, 이런 시대착오적 발상과 무지, 오만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45년 전 1979년 신군부 계엄 당시에는 윤전기 하나만 막으면 됐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그동안 언론 매체(媒體)는 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로 진화를 거듭했다. 전 세계 인구 절반이 사용하는 SNS까지 대체 어떻게 통제하겠다는 말인가.

그날 밤 SNS에 접속한 '시민 기자'들은 오히려 계엄 해제의 선봉장이 됐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안 가결까지 걸린 155분 동안 벌어진 전 과정이 SNS를 통해 전 국민에게 실시간 공유됐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시민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국회로 몰려들었다. 국회 진입 통제 상황과 국회로 날아드는 군 헬기,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 등을 사진과 영상으로 SNS에 담았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최근 스웨덴 현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24년 겨울의 상황이 (이전과) 달랐던 점은 모든 게 생중계되고 (모든 사람이) 모든 걸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맨몸으로 장갑차를 멈추려는 사람도,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사람도, 총을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 보려고 애쓰는 사람도, 마지막에 군인들을 향해 잘 가라고 소리치는 사람도 봤다"며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진 순간"이라고 덧붙였다.

한강은 "젊은 경찰과 군인들의 태도도 인상 깊었다"고 했다. 수천 명의 시민이 국회 앞으로 몰려와 계엄 해제와 대통령 퇴진을 외쳤으나 군과 경찰에서는 어떤 충돌도 보고되지 않았다. 양심과 명령이 부딪치는 그 흔들림 속에서도 죄 없는 국민에게 무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계엄 철수 장면에서 시민들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는 군인도 있었다.

결국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우리 국민의 수준을 오판하고 받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45년 만에 되풀이된 역사의 비극에도 전 세계 외신과 소셜 미디어에는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에서 한국인과 한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모습을 봤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소셜 미디어가 촉매제가 됐지만 총칼의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뛰쳐나온 건 비상계엄에 반대하는 우리 국민 스스로의 의지였다. 무력이나 강압으로는 더 이상 우리 국민의 언로(言路)를 통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