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김수용] 최악의 서민 금융이 보내는 위험신호

입력 2024-12-16 19:18:47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카드론, 보험계약대출, 저축은행 신용대출 등은 서민·취약계층이 급전(急錢)을 끌어 쓰는 대표적 통로다. 법정 최고 금리인 연 20%에 육박하는 이자 부담을 떠안거나 알뜰살뜰 모아온 보험의 원금 손실까지 감수해야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11월 9개 카드사의 카드론 잔액은 42조2천억여원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8월 말 최다 기록을 3개월 만에 갈아 치웠다. 10월 말 은행 대출과 카드론 등을 연체(延滯)한 사람은 무려 614만 명, 연체 잔액은 50조원에 육박한다. 올해 대출금을 제때 못 갚아 경매에 넘어간 부동산도 2013년 이후 11년 만에 최대치다. 11월까지 벌써 13만 건에 근접했다. 돈줄이 말라서 집까지 뺏기는 사람들이 한 달에 1만 명도 훨씬 넘는다는 뜻이다.

보험 해약도 급증세다. 올 들어 9월까지 22개 생명보험사의 누적 해약환급금은 39조3천억여원으로, 2~3년 전보다 2배 치솟았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보장성(保障性)보험마저 깨 버렸다. 생보사 해약환급금 중 보장성보험 비중은 지난해 2분기 29.8%에서 올해 동기 40.0%로 급증했다. 보험 효력상실 환급금도 늘었다. 보험료를 2개월 이상 못 내 해지당한 경우다. 생보사 효력상실 환급금은 3분기 기준 1조3천억원에 육박하는데, 올해 말 역대 최대치를 넘길 전망이다. 대표적 '불황형 대출'인 보험약관대출 이용자는 88만3천여 명으로,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었다. 연체 시 보험료와 이자를 이중 부담해야 하는데도 이렇다.

카드론이 막히고 보험약관대출까지 끌어 쓰면 남은 곳은 대부업체다. 그런데 대부업계 신용대출은 계속 줄고 있다. 법정 최고금리가 24%에서 20%로 낮아져 수익을 내기 힘들어지자 저신용자 대출을 대폭 줄여서다. 지난 9월 기준 대부업권 신용대출 잔액은 8조원 선으로, 2년 전보다 2조원 넘게 줄었다. 서민들 이자 부담을 줄여 주겠다며 법정 최고 금리를 낮췄는데 역효과만 낳았다. 대부업 신용대출 잔액은 평균 1인당 300만~700만원대로, 최고 금리를 조금 낮춘다고 해서 큰 차이가 없다. 제도권 금융은 대부업체가 마지막이다. 막장은 불법 사금융이다.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에서 불법 사금융으로 이동한 저신용자는 최대 9만1천 명으로 추정된다. 피해도 커지고 있다. 올 들어 10월까지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의 불법 사금융 상담은 4만2천409건에 이른다. 지난해 전체 상담 1만130건의 4배를 넘어섰다.

이에 정부는 불법 사금융 의존을 막겠다며 정책금융 상품인 소액생계비대출을 만들었다. 연체가 있거나 소득 증빙 확인이 어려워도 최대 100만원까지 당일 즉시 빌려준다. 그런데 이조차 연체율이 10월 기준 30%에 육박한다. 1인당 평균 대출액 55만원 기준 월 이자는 최대 7천300원인데도 이를 못 갚는다. 불법 사금융이 기승을 부릴 판인데 나라의 대응은 거꾸로 간다. 내년 서민 정책금융 공급액이 올해보다 6천100억원 줄어든 1조200억원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원래 금융위원회가 증액하려 했으나 기획재정부가 긴축 재정을 내세워 이를 막았다. 결국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관련 예산을 증액했지만 결국 무산됐다.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탄핵 정국으로 여야 대치가 극심해지자 국회는 정부가 처음 내놓은 감액 예산안만 통과시켰다. 나라 곳간을 채울 방법을 찾고, 추경 예산도 속히 편성해야 한다. 이자를 못 갚아 신용불량자가 속출하는데 경제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서민 경제가 무너지면 국가 경제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