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초대석-전병서] 한국 '닭'이 되면 안된다

입력 2024-12-16 14:09:13 수정 2024-12-16 17:58:49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는 관세를 '조자룡이 헌 칼' 쓰듯이 마구 휘두르고 있다. 전 세계를 상대로 보편관세 10%, 멕시코와 캐나다는 25%, 중국은 60%씩 부과하겠다고 한다. 무덤 속에 누워 있는 분업 이론의 아담 스미스, 국제무역의 이점을 알려준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탄식할 만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정말 액면대로 실행하면 국제무역과 세계 공급망에 치명적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

1기 집권기보다 더 매서운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가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때리고 중국에도 바로 현재 최고 관세율 25%에 10% 추가 관세를 때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면 다른 나라 같았으면 주가가 폭락하고 온 나라가 대응책 마련에 난리일 텐데 중국은 무덤덤하다.

경험이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트럼프 1기 무역 전쟁 때 25% 관세 폭탄을 맞아 본 것이 약이 되었다. 한 번 맞아본 매는 견딜 만했다는 것이다. 1기 때 고율 관세 폭탄에도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9년 한 해만 줄었고 2020년 이후 다시 증가했다.

중국이 믿는 또 다른 구석은 월마트와 애플이다. 월마트 매장의 60%가 'Made in China'이고 애플은 스마트폰의 95%를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보복 관세 60%를 때리면 월마트의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고 이는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나스닥 시총 1위 기업 애플의 중국 생산 공장을 제재하면 나스닥을 폭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 전쟁에서 애플과 월마트가 중국에 볼모로 잡힌 것이다.

2024년 중국의 총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이고 이 중 대미 수출 비중은 15% 선인데 만약 대미 수출이 0이 된다면 중국의 GDP는 2.8%포인트 하락한다. 중국은 지금 소비가 GDP의 56%를 차지하는데 미국의 수출 감소는 소비를 5%만 늘리면 커버된다. 12월 12일에 끝난 2025년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으로 소비 진작에 올인한다는 발표를 했다. 수출 감소를 내수 확대로 막아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표면상으로는 무역 전쟁을 내세우지만 미국이 중국의 제조 경쟁력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없다. 50년 전에 집 나간 미국 제조업이 보복 관세 때려준다고 돌아올 리 만무하다. 중국의 제조 경쟁력은 일본과 같이 환율 절상으로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의 3차 미중 전쟁은 무역적자를 핑계로 한 환율 전쟁, 금융 전쟁이다. 제조는 세계 1위가 중국이지만 금융에서 부동의 1위는 미국이다. 전쟁은 자기의 강점을 최대로 이용해 승리하는 것이지 상대의 강점을 공격해서는 이길 수 없다. 미국의 강점은 금융이고 약점은 제조이며, 중국의 약점은 금융이고 강점은 제조다. 미국이 선택할 3차 전쟁의 무기는 금융이고 먼저 무역적자 축소를 핑계로 한 환율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원숭이 길들이는 데 닭을 잡아 피를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변칙 복서 트럼프, 중국을 바로 때리는 정공법이 아니라 중국 잡는 데 캐나다와 멕시코를 '닭'으로 쓰고 있다. 미국의 옆집인 캐나다와 멕시코에 중국과 같은 25% 보복 관세를 때리겠다면서 싫으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캐나다 총리에게 면박을 주었다.

반도체와 배터리를 미국에 수출해 무역흑자를 내는 한국은 반도체 소재의 40%, 배터리 소재의 8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중국은 한국에 반도체 소재와 배터리 소재의 수출을 줄여 미국의 IT와 전기차에 치명적인 문제를 발생시켜 미국을 길들이려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이 미국을 길들이는 데 한국을 '닭'으로 쓸 가능성이 농후하다.

싸움꾼은 만만한 놈 한 놈만 팬다. 한국은 느닷없는 대통령의 계엄 선포로 정치와 외교판이 난리가 난 덕분에 트럼프의 중국 길들이는 데 쓸, 만만한 시범 케이스 '닭'이 될 수 있는 위험에 봉착해 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 통과로 정치의 불확실성은 낮아졌지만 외교와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한국은 어떤 경우에도 '닭'이 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급증한 대미 흑자는 빨리 줄이고, 탄핵 과정에서 나타난 중국과의 오해는 빨리 풀어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