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김태진] 시민 의식의 탈을 쓴 집단 폭력

입력 2024-12-09 20:21:57

김태진 논설위원
김태진 논설위원

요즘에야 많이 바뀌었지만 일본에서 이해할 수 없는 모습 중 하나는 식당 내 흡연이었다. 2000년대 후반까지 흔했다. 민폐를 죄악시한다는 일본인들이 밥을 먹다가 담배를 피워 무는 데 스스럼이 없었다. 휴대용 재떨이에 재를 떠는 건 얼핏 상대를 배려하는 '쇼'처럼 보였다. 속마음인 혼네(本音)와 겉으로 드러내는 다테마에(建前)가 다르다지만 드러난 행동이 민폐에 가깝다면 속마음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파업을 권리로 보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톨레랑스(tolerance)'라는 개념이 국내에 유행처럼 번진 건 고(故) 홍세화 작가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공이 컸다. 철도 등 공공 운수 노동자들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파업에 나서도 프랑스 국민들은 톨레랑스를 견지해 함께 견딘다는 게 요지다. '얼마나 힘들면 불편이 예상됨에도 파업을 했겠냐'는 심정적 연대로 읽혔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주역이 윤석열, 김용현 등 충암고 출신들로 드러나면서 충암고 학생들에게도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교무실로도 "도대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친 거냐"는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학생들에게 계란을 던지거나 폭력적 언동을 한 것인데 17세 남짓인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큰 상처다. 학교 측은 6일 교복을 입고 등하교할 때 테러의 표적이 될 것을 우려해 임시 복장 자율화를 단행했다.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화풀이다. 학생들의 수모(受侮)는 선배를 잘못 둔 탓이 아니다. 작변(作變) 감행을 학교가 부추긴 것도 아니다. 비상계엄은 국정에 책임 있는 동문 선배들의 오판으로 벌어진 사태다. 후배의 수모를 보고 고통스러워하라는 의도인지 모르나 후배들이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는 등식은 연좌제와 다를 바 없는 무지와 저열함일 뿐이다. 비상계엄의 정당성에 충암고 학생들이 찬동한 것도 아니다. 연대 책임 요구하듯 분노를 충암고로 분출한 건 미성숙을 넘어 미개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당 의원들의 소셜 미디어에 남긴 욕설도 그렇다. 다짜고짜 자신들의 정의로운 논리를 설파(說破)하는 공간으로 쓴다. 탄핵 투표에 불참한 것을 내란에 동조한 것으로 몰아붙인다. 30대 젊은 의원인 김재섭 의원마저 소셜 미디어를 폐쇄하다시피 했다. 그는 "가족사진에 악성 댓글이 달려 일단 다 비공개로 해놨다. 지역 학생들 팔로워가 많아서 원래도 정치 악플은 제한했었는데 심한 말이 너무 많아서…"라고 했다.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서다.

국민의힘 주요 인사들도 비슷한 고초를 겪는 중이다.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쏟아져 업무 연락도 겨우 할 정도라 한다. 수만 개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이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탄핵 찬성 촉구 문자 보내기 운동'이 일어난 결과다. 마구잡이식 감정 배설에 가까운 말과 글이어도 탄핵 찬성이라는 목적에 부합한다면 애국적이고 정의롭다고 포장될 수 있는 건가.

혈연·지연·학연 등이 있는 이들에게 욕설과 비난을 쏟아붓는 건 한편으로 측은지심을 부른다. 누군가를 뭉개거나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건 무시를 당해 본 경험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얼마나 분노했으면 그랬겠냐고 삭(削)칠 수 없다. 진정한 '톨레랑스'의 영역에는 공격적 욕설과 비난이 머물 공간이 없다. 민주적 시민 의식과 의사 결정이 중요하다면서 겉으로는 집단 폭력을 당연시하는 이들의 현주소다. 이런 이들이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목청을 돋운다. 모골이 송연(悚然)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