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혼란을 틈타 준동(蠢動)하는 괴담과 음모론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거짓된 실체'가 드러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그 반대의 경우다. 괴담이 현실이 된 것이다.
'계엄령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인물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다.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에 내정했을 때다. 김 최고위원은 8월 17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국방부 장관으로의 갑작스러운 교체는 국지전과 북풍(北風)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戒嚴令) 준비 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여기에 가세했다.
당시 계엄령 의혹은 괴담으로 여겨졌다. 의혹을 뒷받침할 근거가 빈약(貧弱)했기 때문이다. 김 최고위원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윤 대통령의 서울 충암고 후배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방첩사령부를 방문해 역시 충암고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 영관 장교 2명 등과 식사 모임을 가졌다'는 내용이 전부다. 이들이 비밀 회합을 통해 계엄을 모의해 왔다는 것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며, 민주화 40년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나?" 국민들은 허술하기 짝이 없는 김 최고위원의 주장을 '시대 역행적(逆行的) 음모론'이라며 무시했다.
당시 대통령실은 계엄령 의혹 제기를 '전체주의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정혜전 대변인은 지난 9월 2일 브리핑을 통해 "나치 스탈린 전체주의의 선동(煽動) 정치를 닮아가고 있다. 계엄론으로 국정을 마비시키려는 야당의 계엄 농단(壟斷), 국정 농단"이라며, 이 대표를 겨냥해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면 당 대표직을 걸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의혹이 제기된 지 3개월여 만에 계엄이 도둑같이 왔다.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 뒤에도 계엄을 '야당의 폭주(暴走)에 맞서기 위한 경고성 조치'로 인식하는 듯하다. 나쁜 의도가 없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악(惡)이 될 수 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다. 5일 김민석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2차 비상계엄 선포 가능성에 대해 "100%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정말 괴담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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