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김수용] 사과 재배지

입력 2024-12-03 20:04:47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기후변화로 사과 재배지가 북상(北上)한다는 소식은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변화를 보면 속도가 심상찮다. 농협중앙회가 2일 발표한 '사과 주산지와 품종 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도 사과 재배면적이 13년 만에 7배가량 넓어졌다. 경북 사과 농가 수는 같은 기간 22% 줄었다. 여전히 경북은 생산량, 재배면적, 농가 수 모두 국내 최대 사과 산지다. 모든 수치에서 절반 이상을 경북이 차지한다. 그런데 이런 시기가 오래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2022년 농촌진흥청이 작성한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 지도'에 따르면, 2030년대가 되면 영호남 대부분이 사과 재배지에서 이탈하고, 2050년대엔 강원도 백두대간 고원 지역 일부만 남는다.

사과는 생육기 평균기온이 15~18℃ 정도의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과일 맛이 들고 예쁜 색깔로 변하며 일정한 크기로 자라는 데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변덕스럽고 지나치게 온화한 날씨가 이어지면 수확량이 크게 줄면서 '금사과' 사태가 벌어진다. 과일에 까만 점이 생기면서 썩어가는 탄저병(炭疽病)이 과수원을 휩쓴다. 지난해 3월 전국 평균기온이 9.4도로, 기상 관측 이래 최고를 기록했는데, 사과꽃이 평년보다 열흘 이상 빨리 피었다. 그런데 갑자기 4월에 냉해가 닥치면서 꽃이 얼어 죽고 말았다. 앞으론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할 수 있다. 사과값이 올라도 농민들은 울상이다. 유통 구조상 중간 마진이 워낙 크다 보니 농민들 몫은 없다.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량을 극단적으로 줄이지 못하면 기후변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강원도 사과를 먹으면 된다는 안이(安易)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강원도는 냉해(冷害)에 취약하고 일조량도 적다. 북한이 사과 주산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겠다. 일제강점기 당시만 해도 황해도 황주·서흥·송화, 함경남도 북청 등이 사과로 유명세를 떨쳤다. 외국산 사과 수입도 현재로선 쉽잖다. 우리나라는 한 차례도 사과를 수입한 적이 없다. 병해충 유입을 막으려는 까다로운 방역 기준 때문이다. 하기야 모든 것이 격변하는 시기이니 언젠가 바나나, 망고를 재배하고 사과, 배를 수입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런 일이 벌어질 정도의 기후변화가 온다면 과연 인류는 무사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