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60% 달하는 한국의 상속세…가업승계제도는 복잡

입력 2024-12-02 18:30:00

전문가 "시간 부족한 중소기업들 제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대구 성서산업단지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 매일신문DB
대구 성서산업단지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 공장. 매일신문DB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60대 후반인 김모 씨는 평생을 바친 기업을 온전하게 후계자에게 물려주는 것이 남은 과제다. 이를 위해 김씨의 자녀는 3년 전부터 회사에 입사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다. 아들은 생산기술과 영업을 담당하고, 딸은 회계업무를 배우고 있다. 다행히 두 자녀가 모두 적응을 잘하고 있지만 문제는 상속세다. 개인 재산은 별로 없고, 오직 기업에만 모든 것을 바친 김씨는 최근 상속세를 대략 계산해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비상장주식 평가를 해 보니 기업가치가 70억원에 달했다. 상속세가 약 25억원이더라"며 "개인 재산도 별로 없는데 상속세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업을 이어나가게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중소기업의 안전한 가업승계를 위한 제도 개편이 시급하다. 높은 상속세로 인해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매각하거나 세금으로 인해 폐업을 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까다로운 가업승계 지원제도 요건과 신청절차를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대 60% 상속세…가업승계 부담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지난 1997년 45%에서 2000년 50%로 인상된 뒤 현행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매우 높다. 50%인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OECD 회원국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그러나 최대주주에 붙는 할증(세금의 20%)까지 합치면 세율이 최고 60%로 오른다.

반면 다른 나라는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축소했다. 캐나다는 지난 1972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했고, 미국은 55%에서 35%까지 낮췄다가 2012년 40%로 고정했다.

〈2023년 중소기업 기업승계실태조사, 중소기업중앙회〉
〈2023년 중소기업 기업승계실태조사, 중소기업중앙회〉

최근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중견기업 기업승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89.4%가 현행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이 '높다'고 여겼다. 2023년 중소기업중앙회의 중소기업 기업승계 실태조사에서도 응답기업의 65.3%가 높은 세금부담이 가업승계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답했다.

국내 기업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중견기업들이 상속·증여세제와 관련한 최우선 개선 과제로 '상속세율 인하'를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상속세 개편이 필요한 5가지 이유'로 ▷기업계속성 저해 ▷경제역동성 저해 ▷글로벌 스탠더드와 괴리 ▷이중과세 소지 ▷탈세유인 등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최근 일본 사회의 가업승계 기피 현상과 정부의 대응정책을 예로 들며 가업승계에 대한 인식 전환을 주장했다.

대한상의 측은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상속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승계를 기피하는 사례가 곧 증가할 것"이라며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으로만 보는 부정적인 시각 대신 기술력과 일자리, 책임의 대물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속세를 인하할 경우 절약된 세금이 기업의 R&D 자금으로 선순환 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다양한 방안책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업상속제도, 요건 완화해야

전문가들은 상속세 문제가 기업의 존망과 직결되는 만큼 '가업상속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리나라는 가업상속공제와 가업증여 특례라는 제도를 두고 있다. 2007년 1억원에 불과했던 가업상속공제는 현재 최고 600억원까지 공제한도가 확대됐다. 가업의 승계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도 최고 600억원까지 한도가 확대됐다. 일반 증여세는 최고 세율이 50%이지만,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를 활용하면 120억원까지는 10%, 600억원까지는 20%의 세금을 내면 된다. 여기에 10억원은 공제를 한 후 증여세를 계산한다.

가업증여 특례에 따른 증여세는 15년 동안 연부연납도 가능하다. 중소기업 CEO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가업승계에 따른 사후관리 기간도 과거 10년에서 5년으로 대폭 완화되었다.

법무법인 새반석 상속증여센터의 박현철(참회계법인 회계사) 전문위원은 "가업승계제도를 잘 활용하면 웬만한 중소기업은 상속세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약 25억원 정도 되는 상속세를 내야 했던 김씨의 경우도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활용할 경우 사업무관자산이 전혀 없어 상속세는 0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상속세를 공제해 주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요건이 엄격해 세제 혜택을 받기 쉽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를 들어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후에도 가업유지, 고용확대 의무 등 상속인이 지켜야 하는 사후관리 요건을 들 수 있다. 한 기업 대표는 "사업을 하다 보면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데 이런 사후관리 요건을 못 지킬 가능성이 크다"며 "다른 기업도 이를 잘 알고 있어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이용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고 하소연했다.

실제 일본 정부는 경영자의 지분을 임원·직원에게 승계(MBO)하거나, 제삼자에게 양도(M&A)하는 등 다양한 기업승계 방식을 마련하고 있다. 또 ▷증여·상속세 감면 ▷보조금 지원 ▷사업승계 상담 및 매칭 지원 등을 통해 기업이 후계자를 찾지 못해 단절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새반석 상속증여센터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가업승계를 위한 제도가 있더라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 운영에도 빠듯한 상황에서 충분한 시간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며 "전문가와 꾸준히 상담을 받으면서 일찍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