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무소르그스키(Modest Moussorgsky, 1939~1881)는 러시아 5인조의 한 사람이다. 러시아 5인조는 국민주의 색채를 띠는 음악가들로 고전 음악의 세계주의, 낭만 음악의 독일적인 경향에 대한 반발과 이에 따른 자국 음악의 재인식에서 출발했다. 당시 낭만 음악에서 독일적인 경향은 이탈리아, 프랑스 음악과 함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 국민주의는 고전주의의 세계 시민주의적인 요소, 낭만주의의 주류적인 경향을 거부하고 자국의 언어와 신화, 전설, 민담, 민요를 소재로 민족적이고 국민적인 감정을 표출하고자 했다.
이러한 의식적 자각으로 형성된 모임이 러시아 5인조(발라키레프,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림스키 코사르코프, 큐이)이다. 이들은 모두 본격적인 음악 수업을 받은 직업 음악가는 아니었지만 결속력이 강한 음악적 동지들이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유럽의 변방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이 유럽에 비해 처져 있었고,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이루고 있었지만 지리적으로는 유럽의 선진 문화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고립 상태를 유지했다. 19세기 중반 유럽은 시민사회가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농노제가 그제서야 폐지되었다.
러시아 국민주의 음악의 특성은 음울하고 심각한 고뇌를 담고 있으며 폭발적인 정열이나 야성이 중요한 특징이다. 무소르그스키의 음악은 광대한 영토에 따른 러시아적 다양성의 한 부분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교향시 '민둥산의 하룻밤'은 강렬하고 기괴하며 독창적이다. 교향시가 형식에서 자유로운 장르인 만큼 무소르그스키는 표제의 그로테스크한 내용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
'민둥산의 하룻밤'은 러시아의 문호 니콜라이 고골의 작품 '다단카 농장의 야화'에 실린 성 요한제의 전설에 영감을 받았다. "밤의 정령이 땅속에서 나와 소란한 향연을 벌이지만 새벽 종소리가 들리자 사라져 버린다"는 표제가 붙어 있다. 표제에 어울리게 곡은 격렬한 리듬의 변화와 회화적인 색채, 야성적인 힘에 넘친다.
음악은 지하에서 음산한 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성 요한제 전날 밤 마녀들이 민둥산에 모여 악마를 위한 연회를 벌이고 향연이 절정에 달했을 때 먼 마을에서 교회 종이 희미하게 울린다. 어둠의 제왕은 움칠하고 다시 진리와 이성을 일깨우는 차가운 종소리가 들려오며 어둠의 세력은 물러가고 날이 밝아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는 무소르그스키의 직설적인 표출과 파격적인 악상을 환상적으로 그려낸다.
'민둥산의 하룻밤'은 대중문화 전반에 퍼져 있는 고딕 취향과도 연결된다. 고딕은 5세기 로마를 파괴한 고트족에서 나온 말로 망자의 귀환, 유령, 해골, 공포, 불안, 사악함 등이 키워드이다. 고딕은 주류에 반발하는 주변적 장르이고 하위문화이다. 저항적인 이미지 때문에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은 대체로 고딕풍이다. 고딕은 공포스러운 과거를 소환한다. 과거는 향수와 추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괴롭히고 훼방 놓으며 발목을 잡는다.
대중문화에서 고딕은 죽음과 유령을 오락거리로 만들며 현대인의 어두운 무의식과 충동을 드러낸다. 여기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괴물과 유령들이 알고 보면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1977년 존 트라볼타가 주연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는 '민둥산의 하룻밤'을 신나는 디스코 리듬으로 변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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