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살해한 아들, 필리핀서 '무죄' 한국에선 '징역 10년' 받았다

입력 2024-12-01 20:03:30

법원 자료사진. 매일신문 DB
법원 자료사진. 매일신문 DB

필리핀에서 거주하던 아버지를 살해한 30대 남성이 현지 사법당국의 영장 기각으로 석방됐으나, 한국에선 '살인의 고의'가 인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형사11부(오창섭 부장판사)는 최근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2017년 10월 필리핀 자택에서 아버지 B씨를 프라이팬으로 가격하고 빨랫줄로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중학교 중퇴 후 부모와 여동생과 함께 필리핀에서 살아왔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가족들과 함께 미용실 체인점을 운영하다 한식당을 추가 오픈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의 폭언과 욕설 등으로 갈등을 빚어오다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당일 아버지 B씨는 필리핀 자택에서 개점 준비 중인 한식당 인테리어 공사 지연 문제로 화가 난다는 이유로 A씨에게 욕을 하며 때린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B씨는 1시간 뒤 딸에게도 비슷한 문제로 욕설을 하다 때렸고, 아내에게도 "자식을 그렇게 키웠으니 죽어라"며 주방에 있던 흉기를 들고 위협했다.

A씨는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프라이팬으로 B씨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이어 옆 방으로 피한 B씨를 쫓아가 목을 졸라 살해했다. 현지 경찰은 A씨를 체포하고 살인 혐의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필리핀 현지 사법당국은 A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B씨의 부검 결과 사인이 심근경색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한 국내 사법당국은 2018년 A씨를 존속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 다만 재판은 A씨의 소재지 문제와 국민참여 재판 신청 및 취소 등의 절차상 문제로 지연되다 올해 9월 시작됐다.

A씨 측은 이 사건 범행을 대체로 시인했지만 필리핀에서 부검했을 당시 사인이 '심근경색'으로 나온 점을 근거로 피의자 행위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는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국내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의학자들은 필리핀 부검의가 작성한 부검 보고서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사망한 시신의 심근경색을 진단하기 위해선 맨눈으로 변화를 확인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현미경을 이용한 조직검사를 해야 하는데, 필리핀에서 작성된 부검 보고서에는 조직검사 시행 여부와 진단에 필수적인 검사 결과에 대한 내용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건 발생 전 흉기를 들고 가족들을 위협하는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프라이팬을 맞고 쓰러진 피해자를 끈으로 목조르기까지 한 것은 사회 통념상 방위 행위의 한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버지인 피해자의 머리를 프라이팬으로 가격하고, 의식을 잃어 저항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빨랫줄로 목을 졸라 살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커 살인에 대한 강한 고의가 있고, 그 죄질이 좋지 않다"며 "다만 행위 자체는 시인하고 있고 피해자가 흉기로 위협하자 우발적으로 범행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