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경 변호사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외국인 아동이 4천 명을 넘었다. 이들은 출생 등록을 할 수 없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법의 사각지대에서 유령인간처럼 지내고 있다. 이들은 학대, 유기 등 범죄에 노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을 수도 없고, 병원에서 예방접종도 받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들의 출생 등록을 위한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여야 정쟁에 막혀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가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임을 천명하고 있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외국인이거나 외국인 어머니가 혼외로 출생한 경우에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게 된다. 출생 미등록 아동은 행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므로 병원에서 건강검진이나 영·유아 예방접종도 받기 어렵고 취학연령이 되어도 학교에 입학하여 교육을 받을 수 없다.
특히 난민 신청자들은 자신의 본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므로 그들의 자녀들도 한국에 계속 머물러 살 수밖에 없으나 출생 등록을 할 수 없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국적법에 있어서 미국은 속지주의(屬地主義)를 채택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와 일본은 부모의 혈통에 따른 속인주의(屬人主義)를 채택하고 있다.
속지주의는 부모가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미국 영토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미국 시민권을 자동적으로 얻게 된다. 반면에 속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부모의 국적이 한국인이어야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을 뿐이어서 외국인이 한국에서 아이를 낳더라도 그 아이가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없다.
순혈주의 단일민족국가를 지향하던 시대에는 속인주의가 타당한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력이 커지고 한류 열풍의 영향으로 이민자의 증가 속도가 현저히 빨라지고 있으며 불법체류자만 40만 명에 육박하여 다민족·다문화국가를 지향하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미국처럼 속지주의를 채택하여 불법체류자라도 한국 영토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한국 국적을 자동적으로 취득할 수 있게 국적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외국인 자녀가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에 대하여 심리적 저항감이 있다면 한국 영토에서 태어난 외국인의 자녀에게 최소한 영주권만이라도 자동적으로 부여해 주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영주권을 취득하여 출생 등록을 하고 자란 이들이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경우 한국 국적을 부여해 주는 것도 저출생으로 병역자원이 점차적으로 고갈되어 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괜찮은 방안일 수 있다.
2022년 말 기준 우리 육군은 37만 명 정도인 데 반하여 북한 지상군은 110만 명에 이른다. 2030년대 말 이후에는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절벽으로 우리의 병력 부족 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다고 예상되고 있다. 병영 문화가 다소 후진적인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청년이 자발적으로 군 복무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국인으로 구성된 부대를 따로 편성할 필요도 있다.
이들이 제대 후 차별받지 않고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해 살아갈 수 있도록 군 복무 중 최첨단 IT 기술 등 4차 산업혁명에 맞는 교육과 훈련을 시켜 제대 후 국내 기업에 쉽게 취직하거나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에게는 군 복무 중 되도록 사이버작전사령부나 드론부대 등에서 일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군 복무를 매력적으로 느끼도록 할 필요도 있다.
한편, 외국인 인구 비율이 2022년 기준 10%에 달하는 경기도 시흥시는 조례를 제정하여 관내에 거주 중인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발굴하여 '시흥아동확인증'을 발급하여 유니세프 등 지원 단체와 연계하여 복지,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등록 외국인 아동을 위한 시흥시의 이러한 노력을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미등록 외국인 아동은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다. 이들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출생 등록을 위한 법안이 신속히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 세계 최고의 저출생 국가인 우리나라로서는 이들이 이 땅에서 법의 보호를 받으며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속지주의로 국적법 개정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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