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수업…토론·발표 통해 생각 자유롭게 펼쳐
공교육 혁신 대안 11개 시도 학교 400여 곳으로 확대
수능 중심 대학 입시 체제는 여전히 IB 교육의 큰 과제
"지도는 어떤 점에서 지식과 유사한가요?"(교사)
"지도는 단순히 영토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만드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 따라 모양이 변형될 수 있어요. 지식도 마찬가지로 권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정보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학생)
대학 강의실에서 오고 가는 대화가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한 교실에서 이뤄지는 수업의 모습이다. 수능 위주의 주입식 공부에 집중하는 일반적인 고교 과정과 달리 질문하고 토론하고 발표하는 수업. 경북대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이하 경북대사대부고)에서 열린 '국제 바칼로레아 디플로마 프로그램(이하 IB DP) 월드스쿨 수업·평가 세미나' 현장을 찾았다.
◆주입식 아닌 생각을 꺼내는 교육
지난 19일 오후 경북대사대부고 2학년 10반에는 'IB 지식이론 Ⅱ'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교사와 학생들은 '지식과 지도'를 주제로 지식과 지도의 유사점과 차이점에 대해 활발한 토의를 이어갔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앉아 또래 친구들에게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근거와 예시를 들며 또박또박 설명했다.
지식이론(Theory of Knowledge·TOK)은 IB 프로그램의 필수 과목 중 하나로, 우리가 아는 것을 어떻게 아는지, 우리가 아는 것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등 '지식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수업이다. 학생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성찰하고 연결·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학생들은 지식이론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2학년 2학기 말 개인 작품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서 지식이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 선택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한 후 학부모, 교사,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학습 결과를 전시하고 발표한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2학년 강다은 학생은 "IB 수업에서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논리에 맞게 전개해 나가면 된다"며 "친구들과 토론하는 과정에서 내 생각을 공유하고 하나의 답으로 인정받을 수 있어 뿌듯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수업을 진행한 류언아 교사는 "모든 과목에서 IB가 추구하는 목표인 '창의적이고 비판적 사고를 가진 학습자'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역량을 기르는 교육을 한다"며 "주제를 정하고 질문을 만들고 답을 찾아내는 등 학생들 스스로 모든 걸 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입식, 암기식 교육과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IB 프로그램
IB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교육재단 IBO가 개발·운영하는 국제 인증 학교 교육 프로그램이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기반으로 개념 이해와 탐구학습을 통해 학습자의 자기 주도적 성장을 추구한다.
IB 학교 단계는 기초학교, 관심학교, 후보학교, 인증학교(월드스쿨)로 구성된다. 경북대사대부고가 속한 인증학교는 IB 본부로부터 인증을 받은 학교로, 5년 주기로 재인증 심사를 받는다.
대구시교육청은 2019년 IB 본부와 맺은 IB 한국어화 업무 협약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공교육에 IB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교육 대상에 따라 초등학교(PYP), 중학교(MYP), 고등학교(DP) 프로그램으로 분류된다. 특히 고교 과정인 IB DP는 정해진 기준을 충족하면 IB 점수를 대입 성적으로 인정하는 전 세계 100개국, 5천여 곳의 대학에 지원할 수 있다.
통상 IB DP 학생들은 1학년 때 일반 교육과정을 선택한 학생들과 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듣고, 2·3학년 2년간 IB 교육과정에 따라 설계된 수업을 듣는다. IB DP 교육과정은 언어와 문학(국어), 언어 습득(외국어), 수학, 개인과 사회, 과학, 예술 등 6개의 교과 영역에 3개의 핵심 과목이 추가된다. 핵심 과목은 지식이론(TOK), 소논문(EE), 창의·활동·봉사(CAS) 등으로, IB DP를 수료하기 위해서는 세 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이 과목들을 이수하는 과정에서 IB가 추구하는 학습자 상(탐구적 질문을 하는 사람, 지식을 갖춘 사람, 소통할 줄 아는 사람 등)이 길러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IB DP 학생들은 교육과정 동안 내부·외부평가에 응시,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 수료증을 획득할 수 있다. 평가는 논·서술형 또는 구술형 시험으로 이뤄지고 전 과목 절대 평가다. 학교 교사, IB 본부 채점관 등이 참여해 IB 본부가 정한 평가 기준에 따라 단계별로 엄격하게 심사한다.
조종기 경북대사대부고 교장은 "IB는 절대 평가이기 때문에 또래 친구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와 경쟁하게 된다"며 "학생들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교육 특성상 중간중간 치러지는 수행평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능 중심 대입 체제 여전히 큰 과제
IB 도입 6년 차를 맞은 현재 대구 지역에는 IB 인증학교 26곳을 포함해 총 98곳의 IB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 경북 등 11개 시도 400곳이 넘는 학교에서 IB 교육을 도입하며 점차 전국적으로도 확대되는 모양새다.
대구 지역 IB DP 월드스쿨 1기 이수자들이 올해 초 해외 대학, 수도권 주요 대학 및 지방 거점 국립대학 등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IB 교육이 공교육 혁신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수능 중심의 대학 입시 체제는 여전히 IB 교육의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재 IB DP 이수자들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요구하지 않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나 논술 전형으로만 대입 지원이 가능하다. 일반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과 이수 과목, 평가 방식이 달라 내신 등급 산출이 어렵고 IB 평가 준비와 수능 준비를 동시에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현재 IB DP 이수자들이 지원 가능한 대학은 국내 대학의 30% 수준이고, 지원 가능 학과 폭도 넓지 않다. 실제로 경북대사대부고 IB DP 1기 한 학생은 IB 평가 점수에서 초고득점(42점)을 받고도 국내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이 학생은 세계 대학 순위 20위권인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지역의 한 교육 전문가는 "IB 교육이 아무리 좋아도 이 과정으로 배출되는 학생에 대한 평가와 선발을 제대로 하는 대학이 없으면 교육혁신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구시교육청은 주요 대학의 입학사정관, 교육부 관계자,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등 교육 관계자들을 초청해 IB의 차별화된 교육과정을 소개하는 등 대학 입시 성과를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이날 "교육청이 공개적으로 IB를 홍보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 미래 교육 방향이기 때문"이라며 "중요한 건 대학에서 IB 졸업생을 받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쿼터를 IB 졸업생에게 지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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