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윤의 역사답사기행 ,잃어버린 땅 만주‧간도를 가다] 조선인의 발자취 서린 비암산에 오르다

입력 2024-11-24 14:30:00

일송정 소나무. 소나무 뒤편으로 용정시내가 보인다.일설에는 이 소나무가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자 1938년 일제가 약을 넣어 말려 죽였다고 한다. 1991년 한국 각계 인사들이 뜻을 모아 복원한 소나무이다.
일송정 소나무. 소나무 뒤편으로 용정시내가 보인다.일설에는 이 소나무가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자 1938년 일제가 약을 넣어 말려 죽였다고 한다. 1991년 한국 각계 인사들이 뜻을 모아 복원한 소나무이다.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가곡 《선구자》 의 노랫말 일부이다

◆일송정 푸른 솔은

비가 내린 뒤 해가 뜬 용정의 아침은 무척 후덥지근하다. 길은 산을 향해 뻗어 있다. 비암산(琵岩山)으로 향하는 길, 생전 처음 가는 길이다. 누군가는 이미 걸었던, 누군가는 앞으로 걸을 길이다.

가곡 《선구자》의 노랫말에 나오는 일송정이 있는 산이다. 높이 824m의 비암산은 악기 비파를 닮은 바위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느 해 먼발치에서 흐릿하게나마 보았다. 언젠가는 저 산 정상에 서 보리라. 그리고 황무지에 조선인의 손으로 일으켜 세운 도시를 한눈에 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산 정상까지 운행하는 전동카트를 타고 출발한다. 산허리쯤 다다랐을 무렵부터는 걷기로 한다. 때로는 발품 파는 게 값질 때가 있다. 숲이 깊다. 아늑하다. 걷는 이가 드물어 고요하다. 여름 야생화가 군데군데 피었다. 두께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두껍게 쌓인 소나무 잎은 걸음을 편안히 한다. 숲 곳곳에서 일어서는 자연의 향기가 충만하다. 용정에서 느끼는 예상치 못한 자연의 선물이다.

일송정 소나무 옆에 세운 정자
'일송정(一松亭)'을 알리는 커다란 돌비석이 허공에 우뚝 서 있다. 웅장하고 호기롭기까지 하다.

숨이 차다. 땀이 쉼 없이 흐른다. 목적지를 향해 내딛는 걸음 앞에 더위는 문제 되지 않는다. 말없이 걷는다. 어느새 정상 아래다. 고개를 드니 '일송정(一松亭)'을 알리는 커다란 돌비석이 허공에 우뚝 서 있다. 웅장하고 호기롭기까지 하다. 뭘 해도 크고 웅장하게 짓고 세우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위상에 새삼 놀란다.

능선을 따라 10여 분 더 발품을 판다. 드디어 하늘과 맞닿은 정자에 이른다. 비암산 정상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돌기둥에 청기와를 얹은 조선의 정자(亭子)와 같아서 조선인들은 '일송정'이라 불렀다. 일제강점기 일제의 핍박이 심해지자, 조선을 떠나 용정에 근거지를 마련한 독립운동가들은 비암산에 자주 올랐다. 일대를 훤히 내려다볼 수도 있고, 조선 정자를 닮은 소나무 아래서 작전회의를 하거나 마음을 모아 독립의 의지를 다지기에 충분했다. 숲이 우거져 은둔하기에도 그만이었다.

해란강과 용정시내.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펼쳐진 너른 평야와 장대하게 흐르는 물줄기는 보고만 있어도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기운을 심어준다.
일송정 소나무 옆에 세운 정자

산 정상 절벽에 홀로 선 일송정은 독립운동가들에게 '겨레의 기상'이라는 커다란 상징과도 같았다.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모습은 마치 '대의를 향해 흔들리지 말고 행하라'는 말씀과도 같았다. 그래서일까. 일설에는 이 나무가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자 1938년 일제가 후춧가루와 고춧가루를 뿌리고 쇠못을 박아 말려 죽였다고 한다.

1991년 한국 각계 인사들이 뜻을 모아 옛 자리에 소나무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일었다. 여러 번 시도 끝에 오늘의 소나무가 있게 된 것이다.

비암산 숲에 세워진
해란강과 용정시내.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펼쳐진 너른 평야와 장대하게 흐르는 물줄기는 보고만 있어도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기운을 심어준다.

일송정에 서니 발밑이 아찔하다. 시야를 뻗으면 용정이 훤히 내다보인다. 서전 벌판과 평강 평야가 한눈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다. 사방 어디에도 시야에 걸리는 것 하나 없다. 광활하다는 표현이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해란강입니다." 누군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다. 그러고 보니 푸른빛으로 가득한 비옥한 벌판을 가르는 한 줄 물줄기가 있다.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펼쳐진 너른 평야와 장대하게 흐르는 물줄기는 보고만 있어도 호연지기(浩然之氣)의 기운을 심어준다.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듯 가득 찬, 넓고도 큰 세상의 기운과 자유롭고 공명정대하여 조금도 망설일 바 없는 커다란 용기를 북돋는 기운이 끝없이 일어서고 있다. 가슴 한가운데로 모여드는 뭉클함이 눈시울을 적신다. 절실한 땅이었다. 먹먹해지는 풍경이다.

◆북간도의 문학 강경애

일송정에서부터 걸어 내려오며 산을 헤맨다. 애초에 산허리부터 걸어 올라온 이유는 반드시 찾아 마주할 것이 있어서다. 한국에서부터 가슴 설레도록 마주하고 싶었던 건 비암산 어디에 세워져 있다는 '강경애 문학비'다.

강경애는 식민지 시대 작가다.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식민지 하층 여성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긴 여성 대변자이기도 하다. 1906년 황해도 송화군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그녀는 궁핍하고 비참한 생활 속에 여성의 삶을 목격하고 체험한 것을 토대로 글을 썼다. 당시 일제의 폭압과 대항해 나선 간도의 시대상을 증언하는 것을 문학의 중요한 과제로 삼았던 그녀의 작품 세계는 바로 작가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 간도 체험에선 나온 자전적 글이었다.

용정시내를 가로지르는 해란강에 놓인 용문교
비암산 숲에 세워진 '녀성작가강경애문학비'. 이 여성문학비 하나를 세우기 위해 박완서 선생을 비롯하여 국내 여러 여성 인사들이 동참했다.

1930년대 식민지 친일 지주와 농민, 식민지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과 대규모 방적 공장의 모습, 당시 노동 운동에 투신했던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사회 각지의 갈등을 뚜렷하게 그려낸 장편소설 《인간문제》(1938),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빈궁의 극한 경지를 그려낸 《지하촌》(1936), 괴뢰 만주국에서 총을 들고 일어선 항일무장부대의 모습과 민중의 감정을 반영한 《소금》(1936)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문학은 한반도 독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강경애 문학비가 비암산 어디에 있다는 건 오래전 문학비를 다녀간 이들의 증언뿐이다. 지도에도 없고, 비암산 관리인들조차 모른다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하나 앞이 막막하다. 너무 간절했던 탓일까. 어떤 이정표가 '문학비 가는 길'로 읽힌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헛것이다. 귀신 곡할 노릇이다. 결국 단서가 될 만한 모든 것을 찾아 산을 헤매고 수소문한다. 전동 셔틀을 운행하는 분이 어디쯤 숲에 흰색의 무엇을 보았다 했다. 무작정 그리로 가 본다. 우거진 숲 사이로 희미한 길이 보이는 듯하다. 가파른 산을 기다시피 오르니 나무숲에 가려진 새하얀 비가 나타난다. 조선어로 새겨진 비문이다. '녀성작가강경애문학비'. 이 여성문학비 하나를 세우기 위해 박완서 선생을 비롯하여 국내 여러 여성 인사들이 동참했다. 풀꽃을 몇 송이 꺾어 문학비 앞에 올리고 눈을 감는다.

박시윤 답사기행 에세이 작가
용정시내를 가로지르는 해란강에 놓인 용문교

◆용정을 적시는 해란강

저물녘 용정 시내로 들어와 해란강 변을 걷는다. 용문교를 건너 호례랑교를 건넌다. 호례랑교는 용정을 가로지르는 해란강 위에 놓은 교각이다. 강바람이 유난히 시원하다. 많은 용정 시민이 나와 교각 위에서 쉼을 즐긴다. 교각 끝에는 난전이 일어섰다. 일행 중 한 사람이 흥정에 끼어든다. 중국말을 몰라 난감하다. 그때, 곁에서 지켜보던 한 노파가 통역을 자처한다. 물건과 가격 사이에 밀고 당기기를 여러 번, 끝내 흥정이 이루어진다.

노파의 부모님 고향이 충청도라 한다. 아들 내외가 현재 한국에 돈 벌러 가 있다는 말도 꺼낸다. "한국은 내게 무척 가까운 나라예요." 목소리가 젖는다. 공산국가에서 중국 한족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조선족들이다.

이제 용정도 조선족보다는 중국인이 점점 비중이 늘고 있다. 조선족은 완전한 중국인도, 완전한 한국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란을 겪다 이제는 중국인을 자부하는 듯하다. 한때는 비록 중국 국적이라 해도 조선인의 긍지와 정체성이 강했다. 조상의 뿌리를 찾아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다. 하지만 한국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잘 계시다 가라는 노파의 젖은 목소리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용정을 세우고 지켜낸 조선인들께 감사할 따름이다.

박시윤 답사기행 에세이 작가

박시윤 답사기행 에세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