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들려주는 마케팅 이야기] 문학으로 떠나는 스페인 여행

입력 2024-11-19 15:55:48 수정 2024-11-19 16:37:06

릴케와 헤밍웨이의 누에보 다리. 하태길 교수 제공
릴케와 헤밍웨이의 누에보 다리. 하태길 교수 제공

스페인의 낭만은 문학 속 배경이 되었던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독일 시인 릴케가 극찬하고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론다(Ronda)의 누에보 다리(Puente Nuevo),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라만차(La Mancha) 평원, 그리고 동화 백설공주의 모티브가 된 알카사르(Alcázar) 성은 문학 속에서 현실로 나온 듯한 장소들이다. 이곳들은 여행자에게 문화와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행지로 자리 잡고 있다. 또한 문학이라는 배경을 활용하여 스페인 문화에 녹여낸 마케팅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릴케와 헤밍웨이에게 영감을 준 론다

론다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이 지상의 끝을 찾을 때, 어지러운 시선이 정지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깊은 협곡을 가로지르는 누에보 다리는 시간 속에 고요하게 잠겨 그림처럼 내려다본다. 릴케와 헤밍웨이가 왜 이 마을을 극찬했는지, 그들의 감성을 움직였던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영감을 얻어 투우에 맞서는 인간의 열정을 글로 풀어냈다. 그는 투우를 인간의 용기가 죽음과 맞서는 극적인 순간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여겼다. 나 역시 이곳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바람이 살며시 불어오는 그 순간마저도 마을이 나를 끌어당겼다. 투우장의 벽돌들은 오랜 시간을 담아냈고, 그 안에서 울려 퍼졌을 함성들이 지금도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릴케와 헤밍웨이에게 영감을 준 마을 론다는, 문학이 살아 숨 쉬는 낭만의 장소로, 한 시대의 이야기가 페이지가 되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누에보 다리가 시작되는 돈 미구엘(Don Migual) 레스토랑 테라스 카페에 앉아, 코르타도(Cortado) 한 잔을 마신다. 문학의 한 장면을 상상하며, 나는 헤밍웨이, 릴케와 나란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이 만남에서, 두 문학 거장은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를 나눈다.

헤밍웨이는 투우장에서 보았던 치열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야기하며 말한다. "투우는 인간이 자신의 두려움과 마주하는 무대지." 릴케는 고요한 미소를 띠며, 삶의 고통과 외로움이야말로 우리가 성장하는 원천이라고 이야기한다. "외로움은 우리를 더 깊은 곳으로 데려가며, 그곳에서 진정한 성장을 이끄는 법이지."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마케팅에 대한 나만의 생각을 꺼낸다. "여러분이 말하는 인간의 감성은 사실 마케팅에서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나는 릴케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릴케, 당신의 시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듯이, 마케팅에서도 브랜드는 고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헤밍웨이, 투우장에서 숨 막히는 긴장감과 위험이 있는 것처럼, 마케팅에서도 도전과 혁신이 필요합니다. 소비자가 브랜드와 함께 모험을 떠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은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긴장감이라는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투우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무대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헤밍웨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릴케는 고개를 끄덕인다. 결국 문학과 마케팅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통한다. 코르타도의 쓴맛이 입안에서 사라질 즈음, 나는 이 대화가 론다의 협곡처럼 기억 속에 오래 새겨질 것임을 느낀다. 문학이 상상력으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듯, 마케팅에서도 브랜드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라만차 평원의 풍차. 하태길 교수 제공
라만차 평원의 풍차. 하태길 교수 제공

◆돈키호테의 모험이 시작된 라만차 평원

라만차 평원에 발을 디디는 순간,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눈을 사로잡았다. 광활한 대지를 스치는 바람이 나를 돈키호테로 변화시켜, 어느새 거대한 풍차 앞에 서게 했다. 이곳 라만차는 현실과 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장소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도전과 모험에 대한 갈망이 마음 속에 피어올랐다. 돈키호테는 1605년 출간된 이래, 해학과 풍자를 통해 근대 소설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다. 많은 이들이 엉뚱한 행동이 난무하는 소설로 알고 있지만, 이 작품은 인간의 이상과 현실에 대한 깊은 고뇌를 담고 있다. 2002년 노르웨이의 노벨 연구소(Det Norske Nobelinstitutt)가 '문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설'로 선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로,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사망일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한다.

라만차 평원에서 풍차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다 보면, 풍차를 거대한 거인으로 착각하고 맞서 싸우던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가 떠오른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꿈을 찾는다면 우리도 돈키호테일 수 있다. 돈키호테처럼 도전하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니라 진정한 용기일 수 있다. 거대한 라만차 평원에 섰을 때, 돈키호테의 그 공허했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라만차 평원의 풍차 앞에 서보지 않았다면, 돈키호테를 온전히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백설공주의 알카사르 성. 하태길 교수 제공
백설공주의 알카사르 성. 하태길 교수 제공

◆백설 공주의 모티브 알카사르 성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보았던 백설 공주가 살고 있는 예쁜 성이 세고비아(Segovia)에 있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백설 공주가 살던 성을 디자인할 때 이 알카사르 성이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우아하면서도 감성 어린 색채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깊은 해자(垓字)를 내려다보며 성 안으로 들어서면 동화의 첫 번째 페이지를 넘긴 것이 된다. 성 안의 이사벨 여왕의 침대는 마치 백설공주의 침대로 변하는 듯한 동화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이처럼 동화적 상상력은 어린이들의 창의력과 결합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모티브가 된다.

스페인 문학 여행을 마무리하며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낯설지만 따스했던 거리가 멀어져 간다. 마지막 장을 닫아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스페인에서 느꼈던 풍경들은 여전히 손에 쥔 책장 위 활자처럼 선명하다. 여행은 끝났지만, 여운은 마음속 깊이 남아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한다.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

하태길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