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열리는 해마다 열리는 지방선거는 숙청(肅淸)의 시기다. 수장이 바뀌면 새로운 비전을 보이려는 의욕도 커지기 마련이다. 길게는 12년까지도 버티지만 짧게는 4년 만에 바뀌는 순장조(殉葬組)가 ▷캐치프레이즈 ▷마스코트 ▷축제다. 전임자 흔적 지우기를 '쇄신'으로 읽어 달라 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다'는 상징적 표식이다.
새로이 시작되는 것들에는 설명에 많은 공이 든다. 주로 '엄근진(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한 품격)'의 풍모가 강한 탓이다. 시쳇말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것인데 도슨트가 옆에서 설명해야 그나마 작품 의도를 알아들을 수 있는 추상화와 비슷하다. 난해함과 비공감 탓에 지속력이 약하다고 볼 수도 있다.
최근 들어 공직사회에 불고 있는 'B급 정서(情緖)' 축제는 엄근진과 거리가 멀다. 저비용 고효율의 B급 콘텐츠로 도전해 본 뒤 통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면 본격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거액의 예산 편성 없이 파일럿 프로그램 격으로 시작한 축제가 대박을 터트리면 그만한 효자도 없다.
지난달 26~27일 김천에서 열린 '김밥 축제'는 '김밥 없는 김밥 축제'라는 빈축을 샀다. 축제 시작 3시간 만에 재료가 소진됐다. "김밥은 먹지도 못하고 편의점 컵라면만 먹었다"는 항의가 넘쳤다. 예상 방문객 수는 2만 명 정도였는데 10만 명이 몰린 탓이었다.
김밥을 축제 소재로 삼은 데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김밥천국'의 공로가 컸다. '김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김밥천국'이라는 답으로 수렴(收斂)됐다. '태평천하'를 '천하태평'이라 읽는 것처럼 음운 도치(倒置)로 합성어를 읽는 건 온전히 읽는 이의 몫이다.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설문 조사를 했다면 김밥보다 국밥을 먼저 떠올린 이들도 적잖았을 터. 그랬다면 국밥을 소재로 삼았을 수도 있었을 테다.
혁신과 쇄신은 필요할 때 해야 공감을 얻는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다 헤져 가는 장갑을 끼고 다닌 것으로 유명했다. 쓸 수 있는 물건마저 바꾸는 건 낭비로 봤다. '김밥 없는 김밥 축제'라는 비판도 있지만, 역발상의 힘이 컸다는 것도 분명했다. 가능성을 보인 축제다. 심기일전해 내년에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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