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전 고려대 외래교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큰 쾌거다. 노벨위원회는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 수상 배경을 밝혔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에 특별한 기여를 한 사람으로 데보라 스미스가 있다. 2016년 '맨 부커상'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번역했다. 스미스는 한 작가의 작품을 외국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이 데보라 스미스가 '고발'을 번역하였다. '고발'은 얼굴 없는 작가 반디(반딧불이)의 소설집이다. 반디는 북한의 소설가이다. 북한의 현실을 담은 반디의 작품은 비밀리에 외부로 반출이 되었고 한국에서 출판이 되었다.
반디와 한강 작가의 교차 지점은 또 있다. 2017년 한강 작가는 미국 뉴욕타임즈에 기고를 한다.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이었다. 6·25 전쟁을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규정하는 등 한강의 관점은 '수정주의 시각'에 가깝게 해석이 됐다. 6·25 전쟁의 책임을 미국과 남한에 전가시키려는 경향의 수정주의 시각은 특히 1980년대 운동권들에게 압도적 영향을 미쳤다.
한강 작가의 기고문이 논란이 되던 바로 그때 뉴스로 나온 게, 얼굴 없는 작가 반디가 연말에 시집을 출간할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제목은 '붉은 세월'이었다. 같은 소설가인 반디는 북한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글을 쓰고 있었고 그때 한강 작가는 미국 뉴욕타임즈에 전쟁 발발자인 북한 김일성의 책임을 희석할 수 있는 수정주의 관점이 담긴 칼럼을 쓰고 있었다.
당시 정당의 대변인이었던 필자는 이 '오버랩'과 함께 북한 탈북자들의 한결같은 말을 인용해 논평을 했다. 수없이 많이 만나본 탈북자들은 "북한 주민들은 김씨 왕조가 항상 미국이 침략한다, 전쟁이 난다 하면서 주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데 차라리 빨리 전쟁이 나서 이 생지옥에 어떤 식이든 변화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전했다.
이 같은 사실에 빗대어 한반도에서 어느 누구는 전쟁이 몸소리쳐진다고 하지만, 같은 사람인데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전쟁을 절실히 원하고 있는 '비극'이 한반도의 진정한 비극임을 한강 작가가 한 번쯤 생각해보기를 권하였다.
노벨위원회가 노벨상을 고려해야 할 사람은 반디가 아닐까. 한강 작가의 소설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반디의 '고발'을 노벨위원회가 꼭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반디는 이미 70살이 넘었다. 북한판 솔제니친이라 할 그가 지금도 북한에 살아있을지조차 결코 알 수 없다.
필자는 한강 작가가 '고발'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우리 역사의 트라우마의 종착 지점은 바로 북한의 인권이다. 거대한 감옥이 되어 있는 북한의 현실, 학살이 끊이지 않는 북한의 독재사회다.
필자도 광주의 학살을 보고 운동권이 되었다. 그리고 한때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지만 북한 주민들의 탈북 행렬 당시 탈북자들의 증언을 셀 수 없을 만큼 듣고, 고뇌하고 절망하며 탈주사파가 되었다. 같은 길을 갔던 많은 운동권들, 변함없이 진보의 편에 서있는 많은 사람들이 남한 역사의 트라우마에는 미치도록 몸서리치면서 북한의 현실에 직면해서는 얼음처럼 멈추는 것을 수없이 목도하고 있다.
민주화와 인권을 존재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38선 앞에서는 고개를 돌린다. 북한의 인권은 철저히 외면한다. 심지어 북한에 인권 문제가 없는 것처럼 왜곡하였고, 북한 독재자에 비위를 맞추어 평화를 달성한다면서 그 독재자가 북한 주민을 억압하는 데 동조하거나, 그것을 방조하거나 방관하는 것을 스스로 정당화하였다.
과연 한강 작가는 38선을 넘어서까지 자신이 추구한 문학적 소명을 다할 수 있을까. 그 역시 여느 진보 인사들처럼 38선 앞에서 딱 멈출까. 그러면서 북한의 현실은 지워버린 남한 만의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걸로 족한 문학으로 남을까.
노벨상을 받은 사람답게 한강 작가는 달랐으면 좋겠다. 엄청난 고뇌와 눈물로서만 한반도의 역사에 진정 오롯이 대면할 수 있다. 회피하지 않는 원초적 정의에 충실할 때만이 진정 한반도의 정의와 마주설 수 있다. 한강 작가에게 그것이 있을까. 같은 작가로서 적어도, 억압 사회의 얼굴 없는 작가가 목숨 걸고 쓴 '고발'을 꼭 펼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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