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을 만나다] 김춘학 플라마파트너스(주) 회장…삼성·CJ건설 수장으로 큰 활약

입력 2024-10-31 06:30:00

대구 출신에 대구고·영남대 졸업, 공채 사원으로 출발해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지휘
삼성에서 CJ건설로 스카웃돼 10년간 대표로 근무하며 그룹 창조경제추진단장 맡아
오랜 임원 철학 "회사를 내 일처럼 생각하고 일하다보면 월급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

김춘학 플라마파트너스(주) 회장은 삼성중공업과 CJ건설에서 28년간 임원을 지내며 국내에 고급주택 브랜드인
김춘학 플라마파트너스(주) 회장은 삼성중공업과 CJ건설에서 28년간 임원을 지내며 국내에 고급주택 브랜드인 '삼성 쉐르빌'을 선보이는 등 건설·건축 부문에서 활약했다. 이무성 객원기자

자산운용사 '플라마파트너스(주)'의 김춘학(68) 회장은 지방대(영남대 건축공학 75학번) 출신으로, 평사원부터 시작해 CEO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중공업 평사원으로 시작해 건설사업부문 총괄, 이어 CJ건설 대표 등 임원 23년 포함 총 40년을 일하며 우리나라 건축·건설 업계의 성장기를 함께했다.
이런 성과를 이루기까지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이 있었다. 삼성중공업 입사 초기 주변 만류에도 해외 건축현장 근무를 자원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눈 떴다. 삼성의 고급주택 사업 부문을 맡았을 때에는 전 세계 고급주택들을 직접 돌아보며 연구한 끝에 '쉐르빌'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이는 등 국내 고급주택 시장을 이끌었다. 이런 성과로 CJ건설 대표로 자리를 옮겨 10년간 일하는 등 최장수 CEO기록을 세웠다. 2018년에는 건축·건설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한국리모델링협회'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김 회장 자택이 있는 서울 용산구 나인원한남 아파트에서 만나 그의 얘기를 들어봤다.

-국내 건축·건설업계에서 총 40년을 일하셨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영남대 건축공학과(75학번)에 입학했습니다. 군 제대 후 1980년에 복학했는데 그 때부터 학교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에 매달렸어요. 동기들은 건축설계 회사도 많이 취업하던 때였는데, 저는 종합건설회사 취업이 목표였어요. 당시도 취업이 쉽지 않은 시기였는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기특하게 봤던지 교수님이 원서 두 장을 주셨어요. 현대건설과 삼성 두 곳을 놓고 고민하다가 대구와 연고가 더 깊다는 생각에 삼성을 선택해 1983년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당시 건설회사로는 현대가 더 컸지만, 삼성은 '대구상회'로 그 뿌리를 대구에 두고 있다고 생각해 더 친근한 이미지였어요. 합격 후 연수 받으러 12월 초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했는데, 강남터미널에 내리는 순간 시베리아 같은 찬바람이 확 느껴졌어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아무 연고도 없는 이 곳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마포 공덕 달동네에 하숙집을 얻어놓고 입사 동기와 여의도까지 출퇴근했어요. 하숙집은 한 겨울 찜통에서 뜨거운 물 받아 세수하고, 눈 오면 왕래도 너무 힘든 곳이었습니다. 서울에 제 집 있고, 밥 잘사주는 모교 선배들 둔 회사 동기들이 제일 부럽던 시기였죠.

김춘학
김춘학 '플라마파트너스(주)' 회장은 삼성중공업과 CJ건설에서 28년간 임원을 지내며 국내에 고급주택 브랜드인 '삼성 쉐르빌'을 선보이는 등 건설·건축 부문에서 활약했다. 이무성 객원기자

-건축·건설인으로서 크게 성장한 계기가 있다면?

▶삼성에서 1989년말부터 1991년까지 해외 파견을 갔습니다. 당시 새한미디어가 아일랜드 현지에서 해외 1호 공장 착공을 할 때입니다. 아일랜드가 좋은 조건을 제시하면서 새한미디어를 기업 유치한 거죠. 아일랜드 현지의 노후된 공장을 개조해서 비디오테이프 생산 공장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그 현장의 토목건축 분야 슈퍼바이저로 자원해 완공 때까지 1년 반 동안 근무했습니다. 당시는 88올림픽 다음 해니까 국내에서 경제상황이 좋았고 대우도 괜찮을 때여서 해외 파견근무는 선뜻 나서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다 저는 첫 애가 태어난지 채 몇 달이 안된 때여서 집에서도 반대가 있었죠.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 또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파견 근무를 자원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건설의 종주국이었고, 아일랜드는 그 발상지였죠. 결과적으로 그 때 해외 근무 경험이 제 인생에 두고두고 자양분이 됐고, 넓은 세상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됐습니다. 해외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도 솟아올랐죠. 88올림픽 성공 개최로 한국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서울'은 알아도 '한국'은 모르는 외국인들이 대다수였어요. 서울이 일본의 한 도시인 줄 알 정도였으니까요.

-삼성과 CJ 두 회사에서 건설CEO로 오래 일하신 비결은?

▶제가 두 회사에서 사원으로 17년, 임원으로 23년을 근무했습니다. 삼성의 선배들이 2,3년 더 못갈거라면서 말렸던 CJ건설 대표직도 10년이나 있었고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무렵에는 CJ그룹 창조경제추진단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삼성에서도, CJ에서도 저 스스로 월급쟁이라는 생각은 별로 안 했습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주인의식을 갖자는 얘기죠. 예를 들어 공사하고 미수금이 10억원, 100억원 생겼는데, 돈 못 받게 되면 누가 가야 돼요? 담당 PM이나 임원이 가서 받아와야지, 오너가 갈 수는 없는 것 아니예요. 니 돈 같으면 가만히 있겠냐, 시늉만 하는 임원들을 제가 많이 혼냈죠. 지금도 내 철학이 '월급 주니까 한다' 가 아니라, 월급하고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고, 그러다보면 월급은 따라온다는 겁니다. 이게 삼성에서 교육받아 체화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인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리모델링협회장으로 추천돼 업계를 위해 봉사하는 경험도 했습니다. 국내 초고층주상복합 아파트들이 많은데, 이미 해외에서는 초고층건물 리모델링이 보편화됐어요. 우리나라 아파트들도 앞으로 그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봅니다.

김춘학
김춘학 '플라마파트너스(주)' 회장은 삼성중공업과 CJ건설에서 28년간 임원을 지내며 국내에 고급주택 브랜드인 '삼성 쉐르빌'을 선보이는 등 건설·건축 부문에서 활약했다. 이무성 객원기자

- 국내 아파트에 '고급주택' 개념을 본격적으로 선보이셨다.

▶1990년 초반에 삼성에서 고급주택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됐습니다. 그 전만 해도 현대아파트, 동아아파트 식으로 아파트 자체 브랜드가 별로 없을 때였습니다. 부유층이 선호하는 고급주택은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이걸 알아보려고 제가 TF를 만들어서 홍콩, 중국, 미국 등 전 세계 고급주택을 찾아다녔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집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주택부터, 부유층이 모여사는 타운하우스까지 찾아다니면서 견학을 했습니다. 그렇게 1999년 '쉐르빌'(CHEREVIL·쉐르빌은 프랑스어로 '편안한'을 뜻하는 'Chere'와 '마을'을 뜻하는 'Ville'의 합성어로 '편안하고 아늑한 집'이라는 뜻) 아파트를 런칭하게 됩니다. 아마 국내 아파트 브랜드화의 첫 출발로 기억합니다. 쉐르빌은 삼성의 일반 아파트 라인인 '래미안'과 차별화를 이루면서 소비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강남 사모님들로부터 특히 환영을 받았다고 해요. 쉐르빌을 성공적으로 런칭한 게 인연이 돼 타워팰리스 2차 건설에도 관여를 하게 됐죠. 그런 커리어 덕분에 박사 논문('고급주택 분양 성공 요인 및 분양률 예측 모델 개발, 2013년')까지 쓰게 됐죠. 주거공간 양극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미 세계적인 추세가 그렇게 가고 있어요.

-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은?

▶지방 출신으로 대기업 입사해서 참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젊은 시절 1년 반의 아일랜드 파견 근무가 제 시야를 확 틔워준 것처럼, 우리 청년들도 사고의 수준을 키워주는 경험을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또 회사에 취업해서는 '내 것처럼 일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발전하고, 어느새 나도 같이 발전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