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 책 읽고 토론하는 '가족 독서토론 캠프' 진행
고등학생 102명 참가해 독서 기반 탐구활동 결과물 발표
천선란·신형철 작가 등 참가자들과 만나 소통의 시간 가져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책 읽는 학생'은 계속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 한 명이 1년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은 17.2권이다. 2014년 21.9권에서 21.5%나 줄었다. 그러다 보니 '족보'를 족발보쌈세트로 알고, '시발점(始發點)'을 욕으로 이해하는 등 학생 문해력 논란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학교 안과 밖에서 학생들의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독서인문 교육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이틀간 대구민주시민교육센터,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에서 열린 '2024 대구 학생 책축제(이하 책축제)'도 그중 하나다. 2009년부터 시작된 책축제는 그동안 한해의 학생 독서인문 교육활동을 정리하는 전시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지난해부터 특강, 체험, 캠프 등 형태가 다양화됐다.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 학생 책축제 현장을 다녀왔다.
◆가족과 함께 책 읽고 토론 진행
이번 책축제에서는 책 읽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해 독서 문화를 확산할 수 있는 '가족 독서토론 캠프'가 진행됐다.
가족 독서토론 캠프는 말 그대로 가족들이 책을 한 권 선택해 각자 또는 함께 책을 읽은 뒤 토론하는 활동이다. 같은 책을 선택한 2~3팀의 가족이 한 모둠을 구성해 2시간 동안 책의 줄거리, 감상평 등 대화를 나눈다.
가족들이 함께 토론할 책은 최근 대구2·28기념학생도서관에서 배포한 '지속가능한 가족공동체 형성 교육' 관련 추천 도서 목록에서 5권을 선정했다. 순례주택(유은실 지음), SNS가족(윤숙희 지음),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지음), 스타 피시(리사 핍스 지음), 훌훌(문경민 지음) 등이다.
각 모둠당 교사가 한 명씩 배치돼 책과 관련된 공통 질문을 던지면 참가자들은 돌아가며 자신이 느낀 바를 진솔하게 공유했다.
공지가 뜨자마자 신청했다는 학부모 채서윤(40) 씨는 "아이가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아 고민이었는데 이번 기회로 책과 좀 더 가까워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신청하게 됐다"며 "가족끼리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 게 쉽지 않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 씨의 자녀 동일초 5학년 권도현 학생은 "가족과 토론한다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고 흥미로웠다"며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다양한 의견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네 자녀를 둔 학부모 김지영(39) 씨는 "아이들이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었다"며 "특히 나이가 들수록 자기 생각이 맞다는 관념에 사로잡히기 쉬운데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포럼 통해 독서·탐구활동 발표
책과 관련된 주제를 정해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탐구활동을 이어온 고교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번 책축제에서 열린 '고등학생 독서포럼'에는 14개 학교 소속 고등학생 102명이 참가해 탐구활동 결과를 공유했다.
이번 활동에 참여한 학생들은 지난 5월부터 '기후환경의 변화'를 주제로 독서 기반 탐구활동을 약 5개월간 진행해 왔다.
성광고 학생들은 책 '최종 경고: 6도의 멸종'을 읽고 기후 위기를 예방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탐구했다. 세부 주제는 '대구시 탄소중립 정책의 실효성 및 실현가능성'으로 정했다. 학생들은 먼저 탄소중립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설문조사를 통해 알아봤고, 이어 시가 추진하고 있는 에너지 전환·녹색교통 부문 정책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조사했다.
오성고 학생들은 책 '나는 기후시민입니다"를 읽은 후 기후 변화가 인간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다. 학생들은 논문, 기사 등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청소년들이 기후 변화로 인해 느끼는 정서적 문제인 '기후 불안증'에 대해 탐구했다. 또 기후 변화로 인한 정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학생들의 발표 후 이재영 공주대 환경교육과 교수, 김미진 대구녹색학습원 교육연구사 등 환경 전문가들의 날카롭고 구체적인 피드백도 이어졌다.
경북여고 2학년 김예강 학생은 "기업들의 환경 전략을 분석하며 기후 위기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며 "과학적 배경지식, 사회 현상에 대한 관찰력이 필요한 방대한 주제였지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작가 만나 책에 대한 소통 나눠
책축제에서는 유명 작가들이 참여해 참가자들과 소통의 시간을 갖는 '저자와의 만남'이 큰 인기를 끌었다. 25일에는 '천 개의 파랑', '노랜드' 등 SF 소설로 유명한 천선란 작가가, 26일에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인생의 역사' 등으로 잘 알려진 신형철 작가 및 문학평론가가 학생, 학부모, 교사 등을 만났다.
이번 강연에서 천선란 작가는 작품 세계와 집필 과정, 지난해 발간된 소설 '이끼숲'에 실린 작품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신형철 작가는 '인지적 공감과 문학의 효용'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상대방 관점에서 이해하고 생각하는 '인지적 공감'을 기르기 위해서는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여한 협성고 2학년 김동현 학생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천선란 작가의 책을 접하게 되어 이번 강연에 참석하게 됐다"며 "책에서는 알 수 없었던 다양한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프리랜서 작가가 되고 싶지만 사실 막막했는데 이번 계기를 통해 꿈이 좀 더 확실해지고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책축제에는 인상적인 구절 필사·점자책 만들기 등 독서연계 체험활동, 교원 수품책(수업 품은 책 읽기) 연구회 및 학생 독서 동아리 성과 발표, 학교 독서인문 교육활동 우수 사례 전시, 대구독서인문교육 슬로건 현장 투표 등 다채로운 독서 관련 활동이 진행됐다. 이틀간 책축제를 방문한 학생, 학부모, 교사 등의 수가 1천700명을 넘어섰다.
독서인문 교육 담당 이주양 시교육청 장학사는 "매년 책축제를 통해 1년간 학교 안팎에서 진행돼 온 독서 관련 다양한 활동들을 소개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친구, 가족, 교사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직접 쓴 글을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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