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계명대 교수
김성동의 '만다라'는 불교 소설 혹은 구도 소설의 백미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소설이 처음 나왔을 때(1979) 세상의 열광과는 달리 불가에서는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자칫 불교를 오해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폭넓은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실상 문학을 잘못 이해하면 오해가 생긴다. 문학은 문학이지 종교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만다라'는 인간 삶의 한 부분을 헤쳐 보는 소설이지 불교학이 아니다.
'만다라'는 깨달음을 구하는 두 젊은 승려(법운과 지산)의 고뇌에 찬 삶의 여정을 보여준다. 화자로 나오는 법운은 불운한 가정사로 인해 세상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10대 말에 출가한 수좌승이다. 그는 큰스님으로부터 '병 속의 새'(남전보원)라는 화두를 받고 6년 동안 정진하고 있으나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병 속에 든 새를 병도 깨지 않고 새도 다치지 않고 꺼내야 하는 과제다.
그런 그가 지산이라는 괴승을 만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자기보다 대여섯 살 많은 지산은 승복을 입은 채 주색을 마다하지 않는, 자칭 땡추다. 전국에 소문이 파다해 그를 받아주는 절은 거의 없다. 그러나 법운은 지산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그는 분명 파계승이지만 경계가 안 보이는 깊이와 신비함을 내장하고 있다. 야위기만 한 그의 몸이 지극히 아름다워 보일 때마저 있다. 법운은 이 지산과 함께 만행(여러 곳을 떠돌며 하는 수행)에 나선다. 바야흐로 지산의 파격적인 수행론이 펼쳐진다.
지산은 법대를 다니며 법관의 꿈을 키우던 중 인간이 인간을 판단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출가했다. 그는 뛰어난 머리로 용맹정진하여 곧 부처라도 될 듯한 기세였다. 그는 당나라 조주의 '無'를 화두로 안고 씨름하던 어느 날 절에 수양하러 온 한 여대생과 마주친다.
인연이란, 특히 남녀 간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거더군. 딱 한 번 눈길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그 여자의 모습은 내 가슴 깊은 곳에 지울 수 없는 지문으로 자리 잡아 버리는 거였으니. 그 한 번의 눈길이 날 이렇듯 허무와 절망의 심연으로 추락시켜 버리게 될 줄이야.(동아출판사, 34)
지산이 인연이란 말로 남녀 간의 불가항력적 관계를 고백하거니와 여대생도 적극적으로 나왔다. 며칠 뒤에 두 사람은 말 그대로 한 몸이 된다.
남자와 여자가 배를 맞대고 이층이 된다는 것은 존재와 세계가 분리의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라는, 저 불교에서 말하는 불이(不二)의 법칙과 합일된다는 거지. 세계는 서로 화해하고 존재는 보편적인 인식의 공간을 획득하게 되며, 그리하여 갈등과 투쟁은 무용한 것이 되는 거지.(37)
남녀교합에서 불이(不二)를 꺼내는 사유의 파격이지만 범인의 식견으로는 불경스럽기 짝이 없다. 그나마 합일의 순간은 짧고 밀려드는 허무의 파고는 높다. 죽고 싶을 만큼 허무하지만 허무는 다시 이층의 욕망으로 바뀐다. 욕망은 다시 허무로 추락하고, 영겁의 회귀가 따로 없다. 지산의 일탈은 1주일 만에 끝나고 승적을 박탈당한다. 그러나 그는 無자 화두를 계속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세상을 떠돌며 주색의 무애행(無碍行)을 이어간다. 승복을 벗지 않은 덕에 법운을 만나고 그에게 또 주색론을 펼친다.
술과 여자를 모르고 부처의 세계를 안다고 할 수 없지. 술과 여자야말로 적나라한 중생의 세계이며 또한 부처의 세계인 까닭이지. 계율이란 목적이 아니고 수단일 뿐이야.(159)
지산이 승복을 벗지 않은 것은 "슬프고 절망적인 회색"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잿빛 옷 속에는 언제라도 먹고 죽을 수 있는 독약이 들어있다. 어느 눈 내린 겨울 법운은 기거하던 암자 근처에서 지산을 시체로 발견한다. 언덕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합장한 자세의 지산을. 그의 등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바랑이 매달려 있을 뿐이다. 법운은 장작을 쌓아 승적도 없는 지산을 홀로 다비(茶毘)한다. 시체는 영혼만 남은 것처럼 가볍디가볍다. 법운은 아프게 묻는다.
지산 화상이여, 어디로 가시는가? 이 뜨겁고 괴로운 삼계의 업화(業火)를 마다하고 어디로 가시는가? 도솔천으로 가시는가. 고독지옥으로 가시는가?(205)
그가 어디로 갔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법운에게 "허무와의 피나는 싸움" 끝에 쓰러진 지산의 빈자리는 크다. 질투 섞인 부러움과 슬픔이 뒤섞여 있다. 그도 미친개처럼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술을 퍼마셔 본다. 그러나 번뇌는 사라지지 않고 더욱 심해질 뿐이다. 새는 여전히 병 속에 갇혀있다.
이제 여자를 만나기로 한다. 먼저 어릴 때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여자(어머니)를 찾는다. "그때는 피가 뜨거워서 그랬다"고 용서해 달라는 어머니의 늙은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이미 오래전에 용서했음을 깨닫는다. 다음으로 예전에 벽운사에서 봤던 코스모스 같던 단발머리 소녀를 만난다. 소녀는 이제 누님처럼 아름답고 성숙한 숙녀가 되어 있다. 자신은 파계한 땡추라며 술을 사달라고 한다. 그녀는 술 취한 백운을 따라 여관방까지 들어온다. 그러나 백운은 지산이 남긴 나무 불상을 주며 여자를 돌려보낸다. 이로써 그는 지산의 부채를 덜어내고 독립한다. 기차역으로 가 피안(彼岸) 행 차표를 끊고 대합실에서 기다린다.
그때 노파 한 명이 다가와 이쁜 아가씨와 놀다 가라고 한다. 백운이 좁고 더러운 방으로 따라 들어가니 화장대 위에 밀레의 만종이 걸려 있고 그 밑에는 시 한 수가 적혀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말 일이다." 옆방에서 손님과 싸우는 여자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내 번뇌와 방황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일까." 그때 만취한, 나이를 알 수 없는 여자 한 명이 들어와 치마를 벗으며 빨리 오라고 한다. 그러나 여자는 이내 코를 골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여자가 코를 골 때마다 반쯤 떨어진 가짜 속눈썹 한쪽이 엷게 흔들렸다. 화장이 밀린 피부는 거칠었고 나무뿌리 같은 잔주름이 눈가에 얽혀 있었다. 나는 그런 여자의 참담한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순간 벼락 맞은 것처럼 확연하게 깨달았다. 방매하는 시장의 가축처럼 내던져져 있는 저 여자의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무너지듯 여자의 배 위에 엎드려 이층을 만들었다.(244)
법운은 뿌옇게 새벽이 밝아 오는 도시로 나온다. 길 위로 사람들이 바쁘게 오간다. 그는 역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차표를 찢어버린다.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힘껏 달려간다.
소설 '만다라'는 여기서 끝난다. 작가는 22년 뒤에(2001년) 개정판을 내면서 법운이 차표를 들고 역으로 향하는 것으로 수정한다.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한지 모르겠으나 어느 쪽으로 가든 또 다른 시작이지 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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