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환의 세계사] 독신 노벨, 혈육 대신 인류의 빛 ‘노벨상’ 남겨

입력 2024-10-23 13:30:00 수정 2024-10-23 14:29:51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노벨상.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에 이어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전남 목포에 김대중 노벨상 기념관이 있다. 전남 장흥군은 한강의 부친 한승원 작가의 생가를 사들여 기념관을 조성한단다. 노벨상에 얽힌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본다.

◆ 아바의 나라, 북유럽 발트해의 진주 스톡홀름

비행기를 타고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에 내리면 깜짝 놀란다. 공항 남쪽 37km 지점의 스톡홀름 시가지로 들어가는 철도 요금 때문이다. '알란다 익스프레스'라는 공항 고속철도 왕복 요금이 8만원에 가깝다. 파리나 런던, 로마, 아테네 같은 주요 서유럽 국가 공항철도에 비해 가격이 2-3배 비싸다. 7-80년대 전 세계 팝 음악계를 휩쓴 아바와 볼보의 나라인 동시에 고물가의 나라임을 실감한다. 대신 20분도 안돼 스톡홀름 중앙역에 도착하니, 빠르기는 최고다.

6월 초 겪어본 스톡홀름 날씨는 해가 나면 봄, 구름이 해를 가리면 겨울이다. 한마디로 사람 살기는 좋지 않은 기후다. 대기의 질은 청정 그 자체다. 바다와 강으로 둘러싸인 물의 도시지만, 비릿한 내음도 없다. 시내 곳곳에 유서 깊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 발트 3국, 폴란드, 독일, 덴마크가 접하는 발트해의 진주로 손색없다.

노벨상 박물관
노벨상 박물관
알프레드 노벨 부조. 노벨상 박물관
알프레드 노벨 부조. 노벨상 박물관

◆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도보 15분 거리 노벨상 박물관

스톡홀름 중앙역에서 나와 남쪽으로 걸으면 오른 편에 스톡홀름 시청 건물이 보인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 바다에 이르면 2개의 섬이 눈앞에 나타난다. 왼쪽으로 스웨덴 의회가 자리한 섬, 그 오른쪽으로 스웨덴 왕궁과 노벨상 박물관이 자리한 섬이다. 다리를 건너 섬 중심부 스토르토르게트 광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광장 북쪽 면에 르네상스 양식에 네오 클라식 파사드를 혼합한 2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전 세계 많은 이들의 꿈의 무대, 노벨상을 기념하는 노벨상 박물관(Nobel Prize Museum)이다. 역에서 1.1km, 보통걸음으로 15분 거리다.

생각보다 건물이 웅장하지 않다. 노벨상 시상식이 열리는 대극장은 스톡홀름 시청사다. 이곳은 단지 노벨상을 기리는 박물관이어서 평범한 2층 건물의 면모다. 노벨상 박물관은 1901년 시작된 노벨상 100주년을 맞아 2001년 문을 열었다. 당초 노벨 박물관((Nobel Museum)이었지만, 2019년부터 상(Prize)을 넣어 노벨상 박물관이라고 부른다. 박물관 건물 1층에 여러 유물을 전시한다.

김대중 대통령 기증 성경. 노벨상 박물관
김대중 대통령 기증 성경. 노벨상 박물관

달라이 라마 기증 불경과 염주. 노벨상 박물관
달라이 라마 기증 불경과 염주. 노벨상 박물관

◆ 노벨상 박물관, 김대중 대통령 성경책 전시

한국인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유물은 한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물일 게다. 1층 전시실 가운데 중간 벽면에 김대중 대통령이 사용하던 『성경전서 찬송가』가 반갑게 맞아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뒤, 2001년 박물관 개관에 맞춰 기증한 도서다. 그 옆에는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사용하던 불경(Sutra)과 염주가 눈 인사를 건넨다.

네안데르탈인 두개골. 노벨상 박물관
네안데르탈인 두개골. 노벨상 박물관

◆ 뢴트겐의 X-선관, 네안데르탈인 유골...

기념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120년 넘는 유구한 역사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거다. 필기구나 도서, 연구에 썼던 물품이나 생활용품들이다. 눈에 띄는 것들을 대략 꼽아보면 우선 X-선을 우연히 발견해 인류 의료 기술 분야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던 뢴트겐의 X-선관(Tube)이다.

1908년 프랑스 라 샤뻴 오 셍에서 출토된 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 두개골도 눈길을 끈다. 40살 전후해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류 네안데르탈인은 건강이 많이 나빠진 상태에서 숨졌고, 치아가 모두 빠진 것으로 밝혀졌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에도 일부 유전자를 남기는 조상이어서 그런가, 좀 안쓰럽다. 퀴리 부인, 노벨 문학상의 윈스턴 쳐칠, 평화상의 넬슨 만델라 유물도 자리를 지킨다.

◆ 히틀러, 독일국민 노벨상 수상금지법

유럽 현대사는 이 사람을 빼놓고 지나치기 어렵다. 히틀러. 1935년 독일 저널리스트 칼 폰 오지츠키가 반나치 성향 문필 활동으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이에 히틀러는 1937년 1월 독일 국민은 노벨상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별별 예외적인 입법과 탄핵에 매몰된 22대 대한민국 국회를 연상시킨다. 히틀러의 이 특별법으로 1938년과 1939년 노벨상 수상자로 지명된 3명의 독일인들은 히틀러 사후 상금 없이 상장만 받아야 했다.

북베트남 레둑토에게 수여하려 했던 1973년 노벨 평화상 상장. 노벨상 박물관
북베트남 레둑토에게 수여하려 했던 1973년 노벨 평화상 상장. 노벨상 박물관

◆ 파스테르나크 강제, 사르트르와 레둑토 자발적 거부

1958년 소련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닥터 지바고'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지명됐다. 하지만, 소련 정부의 강제 거부 조치로 사후 29년이 지나 1989년 수여됐다. 자발적인 거부자는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 사르트르가 최초다.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자, "작가는 아무리 명예로운 상이라도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일을 피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거부했다.

노벨 문학상을 손꼽아 기다리는 나라나 작가들이 대세이지만, 이렇게 당당한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에서 인류사회의 다양성이 읽힌다. 수상자에게 가지 못하고 노벨상 박물관에 남아 있는 상장도 있다. 1973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 북베트남의 레둑토에게 수여됐던 상장이다.

파리 회담으로 베트남 전쟁 종식의 돌파구를 연 미국의 키신저와 레둑토는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지명됐다. 키신저가 상을 받은 것과 달리 레둑토는 위원회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도 아직 전쟁이 종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을 물렸다. 베트남 전쟁은 2년 뒤, 1975년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났지만, 상장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았다.

노벨 발명품 다이너마이트. 노벨상 박물관
노벨 발명품 다이너마이트. 노벨상 박물관

◆ 레비스트로의 '이항구조'를 통해 본 노벨상

노벨상은 역설적이다. 특히 평화상이나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를 보듬는 문학상이 그렇다. 노벨상은 1833년 스웨덴에서 태어난 노벨이 폭파와 파괴의 상징인 다이너마이트를 1866년 발명해 얻은 막대한 부로 마련됐으니 말이다. 인류학자이면서 후기 구조주의의 문을 연 레비스트로의 이항구조(二項構造)로 분석해 보면 폭파와 평화(인간 감정)는 대립관계다.

이를 조정 중재하는 사기꾼(레비스트로 표현)이 노벨상이다. 노벨상이라는 신화는 상금이라는 세속적 물욕의 페티시와 인간을 위한 최고 성과라는 속성을 동시에 지니며 폭파와 평화를 조율해 낸다.

노벨 연구실 사진. 노벨상 박물관
노벨 연구실 사진. 노벨상 박물관

◆ 1895년 노벨 유언, 1901년 첫 수여

1896년 63살로 이탈리아 산레모에서 숨진 노벨은 죽기 1년 전 1895년 재산의 사회 환원 유언장을 남긴다. 유언장은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이익을 안긴 사람에게 수여한다"는 내용만 돼 있을 뿐 누가 무엇을 선정하고 얼마 주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그래서, 논의 끝에 1900년 노벨 재단(5명으로 구성, 의장은 스웨덴 국왕 지명, 현재는 자체 선정)이 성립되고,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스웨덴 과학원, 문학상은 스웨덴 한림원, 의학상은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 노벨상 위원회, 평화상은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가 정하기로 한다.

1901년 상을 주기 시작했고, 스웨덴 사회과학원에서 정하는 경제학상은 1969년 첫 수상자를 냈다. 노벨 재산의 94%가 기금으로 들어왔고, 현재 2억6천600만 달러다. 상금은 1백만 달러 정도.

독신이던 그는 단 한 명의 혈육도 남기지 않았지만, 인류가 존속하는 그날까지 가장 빛나는 이름이 될 노벨상을 남겼다. 노벨상 수상자가 아닌 노벨상 같은 상을 남길 한국인은 없을까...

역사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