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68>고송과 유수가 있는 누각에서 노닐다

입력 2024-10-16 14:31:44

미술사 연구자

이인문(1745~1824?),
이인문(1745~1824?), '누각아집도(樓閣雅集圖)', 1820년(76세), 종이에 담채, 86.6×57.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조~순조 때 화원화가 이인문은 자신의 호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처럼 고송과 유수를 배경으로 고인아사(高人雅士)가 있는 운치 있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 산수가 아름다운 한적한 곳에서 사는 것, 고상한 친구와 벗하는 것은 옛사람들이 지향한 삶의 이상이었다. 그런 심정으로 마음 맞는 친구들과 풍광 좋은 곳에서 청유(淸遊)하며 회포를 풀었고 아집도, 아회도(雅會圖)로 남기기도 했다.

'누각아집도'는 이인문이 자신과 임희지, 김영면, '영수' 등과 모였던 일을 기념한 그림이다. 중국식 옷을 입은 사의풍 인물이어서 얼굴 모습을 알기는 어렵고, 장소 또한 정형산수 풍으로 재구성됐다. 그림 위쪽에 써넣은 글이 이날의 아회를 설명해 준다.

흐르는 물이 고송 몇 그루 가운데로 지나가니 골짜기 가득 푸르고 차가운 바람이 인다. 탁 트인 누각 창에 아지랑이 영롱한 사이에 책상에 기대 축을 펴는 이는 도인(이인문)이오, 손에 그림을 들고 우두커니 보는 이는 수월(임희지)이오, 거문고를 놓아두고 난간에 기댄 이는 주경(김영면)이오, 의자에 걸터앉아 길게 읊조리는 이는 영수(?)이니 이 넷은 죽림칠현에 필적할 만하다. 그런데 문득 이끼 낀 길 시냇가에 이야기하며 나란히 나타난 이들은 누구인가? 또한 뛰어난 기풍이 있는 이들이리라.

古松幾株流水貫其中 蒼蒼冷冷滿谷生風 穿然軒牕 雲霞玲瓏之間 倚几而展軸者道人 手把畵箋而佇觀者水月 抛琴倚欄者周卿 踞凳而長吟者潁叟也 此四人可敵七賢 然忽於苔徑溪畔 談笑而聯翩者誰歟 亦此傑氣中人

이렇게 네 명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시를 읊고, 거문고를 연주하며 차를 마셨다. 나중에 두 명이 더 합류한 것 같다. 글을 이어나가다 보니 여백이 꽉 차버려 관지는 앞쪽에 이렇게 썼다.

도인 76세 늙은이가 그림을 그렸고, 수월이 보았으며, 영수가 증명했고, 주경이 평하였다. 때는 경진(1820년) 청화월(4월)이다.

道人七十六歲翁畵 水月觀 颖叟證 周卿評 時庚辰淸花月

76세의 나이에도 이인문의 기량은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 화면 전체에 떠도는 투명하고 은은한 분위기, 치밀한 구성, 섬세한 세부 묘사 등 이인문의 화풍은 노년으로 갈수록 더욱 무르익었다. 병풍처럼 둘러싼 암벽과 물소리가 들릴 것 같은 계곡, 누각 뒤의 죽림과 삼면을 둘러싼 고송 등 맑은 담채와 꼼꼼한 세필은 힘이 충분하면서도 여유로워 노대가가 도달한 위대한 경지를 웅변해준다.

당대의 일류 감식안인 남공철, 신위 등으로부터 '신필(神筆)', '묘수(妙手)'로 칭송 받은 이인문의 실력을 유감 없이 보여주는 아집도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