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모의 영혼의 울림을 준 땅을 가다] 한국인 최초의 세계인 혜초와 고선지가 밟은 길기트

입력 2024-10-17 11:21:32 수정 2024-10-17 19:12:09

해발 1,500m에 위치한 군사·행정·교통의 중심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거점도시
길기트 강 위의 비래노 현수교, 고선지 장군의 승전지
무슬림 국가에 남은 불교유산 '카르가마애불' 눈길…티베트 점령의 흔적

길기트강 협곡에 있는 비래노 현수교.고구려출신 당나라유민 고선지장군이 토번(티벳) 원군이 길기트 강을 건너오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강의 교량을 끊었다는 역사가 깃든 곳이다.
길기트강 협곡에 있는 비래노 현수교.고구려출신 당나라유민 고선지장군이 토번(티벳) 원군이 길기트 강을 건너오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강의 교량을 끊었다는 역사가 깃든 곳이다.

◆ 당나라 서역정벌 영웅 고선지 장군의 승전지 길기트 현수교

파수에서 길기트(Gilgit)로 오는 길목의 길기트강 위에 놓여있는 비래노(Bireno)현수교에 도착했다. 이곳은 고구려 유민출신의 당나라 장군인 고선지(高仙地)가 747년 길기트 원정시에, 토번(티벳) 원군이 길기트 강을 건너오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강의 교량을 끊었다는 역사가 깃든 곳이다.

고선지는 실크로드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고구려출신 당나라 장군이다. 당시 소발률국(小勃律國)이었던 이곳에서 토번군을 물리쳤고,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영국군이 주둔하였다. 현재 북부 파키스탄을 지키는 군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우리 선조인 고선지장군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역사 속에서 그 존재를 처음 드러낸 때는 8세기였는데, 당시는 실크로드의 요충지 길기트를 두고 당과 토번이 다투던 쟁탈전의 와중이었고, 그 주인공이 바로 고선지였다. 고선지 장군의 군대는 까마득하게 보이는 계곡을 내려가 현재의 길기트인 소발률국의 수도를 점령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세계전사에 길이 빛나는 작전이었다.

비래노 현수교는 카라코람대학이 인접해 있어 이슬람대학생들에게 중요한 통로이며,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비래노 현수교는 카라코람대학이 인접해 있어 이슬람대학생들에게 중요한 통로이며, 아름다운 경관과 역사적 관광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당시 소발률국이 고선지의 당군에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받은 토번조정에서는 스카루드에 주둔하고 있던 2만명의 구원병을 길기트로 급파 하였다. 그러나 고선지는 유일한 통로인 현수교를 미리 끊어 버렸기에 토번군은 결국 강을 건너지 못해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길은 외길이었고, 교량을 수리하는 데는 1년이나 걸리는 대역사였기 때문이었다.

이 역사적인 비래노현수교는 길기트에 위치한 가장 오래된 현수교 중 하나로 길이는 155m이고, 너비는 2.5m다. 이 교량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숨 막히는 주변풍경을 지나 이웃 국가인 중국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카르카 마애불은 절벽에 오른손을 명치 아래에 올린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카르카 마애불은 절벽에 오른손을 명치 아래에 올린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 이슬람속의 온화한 미소 짓는 카르가 마애불

국민의 97%가 무슬림인 파키스탄에도 불교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인도불교가 중국으로 거쳐간 파키스탄 북부는 오래전 티베트가 점령하여 불교유산을 남겨둔 곳이기도 하다. 길기트에서 약10㎞ 떨어진 산 절벽에 조각된 카르가 마애불(Kargah Buddha)은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깎아지른 절벽20m 높이에 새긴 암각화는 가로2m, 세로3m 크기로 부조된 마애불은 절벽의 형세를 살린 기술이 놀랍기만 하다.

암각화를 올려다보면 마애불이 오른손을 명치 아래에 올린 채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네모난 얼굴은 펑퍼짐하고 귀는 늘어졌다. 티베트 양식으로 볼 수 있는 근거란다. 암각화 위로는 마애불을 보호하려는 듯 모자바위가 차양역할을 한다.

카르카 마애불은 절벽에 오른손을 명치 아래에 올린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카르카 마애불은 절벽에 오른손을 명치 아래에 올린 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여행자가 고개를 들자 절벽 안에서 미소 짓는 부처가 눈을 마주치는 듯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광경에 빠지면서, 오래전 불교를 전하러 먼 길을 떠난 이들이 이곳을 지났다는 설명을 들으니 '고행'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여행자들은 카르가 부처님에 감탄하고, 계곡의 고요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거대한 부처의 침묵 속에서 과거의 메아리가 공명하는 시간의 연대기를 통한 여행이다. 이 놀라운 유적지 앞에 서 있으면 역사, 문화 및 영성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무성한 녹색풍경, 눈 덮인 산, 유백색 빙하덮개 및 풍부한 다양성이 있는 고산지역 숲이 아름다운 지역이다.

◆ 파키스탄 북부의 교통요충지 이슬람마을 길기트

길기트는 파키스탄 북부지방의 군사상 거점이며, 부근의 소수민족에 대한 행정의 중심지이다. 카라코람산맥을 이루는 언덕들 사이 해발 1,500m에 위치한 힌두쿠시산맥과 카라코람 산맥사이로 흐르는 인더스강과 길기트강이 합쳐지는 곳에 있다.
길기트강 유역에 있는 북쪽은 타림분지, 서쪽은 아프가니스탄, 동쪽은 티베트, 남쪽은 인더스강 유역과 연결되어, 고대부터 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하였다.

길기트 시내를 걷다가 옥상에서 차를 마시던 현지인들과 어울려 친절한 국민의 파키스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길기트 시내를 걷다가 옥상에서 차를 마시던 현지인들과 어울려 친절한 국민의 파키스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슬람 종파분쟁이 끊이지 않는 길기트 사람들이지만, 이방인에게는 친절하고, 누구보다 따뜻하게 환대하는 문화가 찻잔에 담겨 있었다.
이슬람 종파분쟁이 끊이지 않는 길기트 사람들이지만, 이방인에게는 친절하고, 누구보다 따뜻하게 환대하는 문화가 찻잔에 담겨 있었다.
장기간 여행으로 머리가 길어 이발소를 찾았는데, 회색빛 이발소가 흥미롭고 가격도 한화로 1,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장기간 여행으로 머리가 길어 이발소를 찾았는데, 회색빛 이발소가 흥미롭고 가격도 한화로 1,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한때 불교가 번성했던 이곳은 중국에서는 소발률국으로 불렀으며,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실크로드의 거점도시라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는데, 우리나라의 혜초스님과 고선지장군도 1,300년 전에 이곳을 찾았다.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 이스마일리파가 혼재하며, 새벽부터 한밤까지 하루 5차례씩 모스크에서 무슬림의 예배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시내가 궁금해 숙소를 나서자 거리전체가 시장을 이루고 있다. 망고와 수박 등을 파는 과일가게, 아이들이 몰려있는 아이스크림가게, 파리가 폴폴 날리는 정육점, 의자 몇 개 놓고 짜이를 파는 집, 탄두라와 화덕에 난을 구워내는 집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를 지나다가 옥상에서 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여행자를 향해 손을 흔들며 오라는 손짓을 한다. 반겨주는 현지인들을 향해 올라가니 차를 시켜주며, 한국에 대해 최고의 나라라고 치켜세운다. 여행자도 아름다운 나라와 친절한 국민의 파키스탄과 길기트에 대해서 박수를 보냈다.

길기트 시내에 있는 간이역 같은 작은 국내선 길기트 공항은 해발 1,500m에 위치한 고산공항으로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길기트에서 함께 다닌 파키스탄 친구 샤말리와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하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길기트 시내에 있는 간이역 같은 작은 국내선 길기트 공항은 해발 1,500m에 위치한 고산공항으로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있다. 길기트에서 함께 다닌 파키스탄 친구 샤말리와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하며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 결항과 지연이 신의 뜻인 길기트 공항

길기트 공항은 시내에서 동쪽으로 2km 떨어진 해발 1,500m에 위치한 작은 국내선공항이다.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비행기가 뜨고 내리기 만만한 공항이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기상상태에 따라 비행기결항이 매우 잦은데, 운행기종까지 노후된 터라 기체결함으로 결항도 심심치 않단다. 짧은 활주로와 계곡의 위치 때문에 큰 항공기는 운항 할 수 없다고 한다.

다행으로 여행자가 떠나는 날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맑고 화창한 바람 없는 날씨. 이 정도면 99% 확률로 이슬라마드로 갈 수 있겠다 싶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오랜 기간 함께 다닌 긴 턱수염이 트레드마크인 파키스탄 친구와 아쉬움의 작별인사를 했다.

6시간이나 기다려 맞이한 프로펠러 비행기가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는 최고의 구세주 같았다.
6시간이나 기다려 맞이한 프로펠러 비행기가 이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는 최고의 구세주 같았다.

출발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안내나 여행정보가 없다.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멍 때리기를 하고 있었다. 카운터에 문의를 하니 가는 비행기가 오지 않았다는 답변뿐이다. 기상이나 비행기 결함 등 어떤 사유도 모른다는 것뿐이고, 답은 기다리라는 것이 전부다. 미국에서 여행 온 가족들과 재미있는 문화이야기를 하면서 파키스탄 항공사의 약자인 PIA가 Pakistan International Airline이 아니라 Pakistan Inshaallah(신의 뜻) Airline이라고 했더니 엄지 척을 하면서 파안대소 했다.

그때 요란한 프로펠러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린다. 돌아갈 비행기가 착륙하는 소리다. 드디어 왔구나. 이 비행기가 6시간이나 늦어서라도 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차를 타고 가면 12시간은 걸리나 이것도 도로사정이 고려되어야 한다는데 모든 것이'인샬라'다.

이내 비행기는 큰 프로펠러 굉음을 내면서 이륙하자, 길기트의 시내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행기 아래로 펼쳐지는 절경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구름사이로 대형빙하와 만년설 봉우리들이 가까이에 보인다.

안용모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ymahn110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