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입력 2024-10-15 18:00:20 수정 2024-10-16 07:37:43

이상헌 세종본부장
이상헌 세종본부장

얼마 전 집 근처에 들어선 새 아파트 견본주택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네모꼴 곽 휴지 하나 받으려면 1시간 넘게 줄을 서야 한다는 안내원의 말에 이내 발길을 돌렸다. 전화번호를 남겨 달라는 부동산 아주머니들의 손길에서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가 실감 났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어느새 물러간 것처럼 '미분양의 무덤' 대구 부동산 시장에도 시나브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이달 대구 아파트 분양 전망지수는 11개월 만에 기준선을 회복했다. 거래량 역시 조금씩 늘어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훈풍이 대구 전역에 부는 것은 아니다. 준공 후 10년이 채 되지 않은 새 아파트에만 온기가 퍼지는 중이다. 한여름 내내 외쳤던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커피)가 아니라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선호 현상이다.

비단 대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어느 부동산 분석업체가 올해 1~7월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률을 파악했더니 입주 1~5년 차 단지는 0.41%, 6~10년 차 단지는 0.31% 오른 반면 10년 초과 단지는 0.13% 상승에 그쳤다. 이는 몇 년 전과 정반대 양상이라 낯설다.

저렴한 구축(舊築) 대신 비싼 신축만 찾는 트렌드를 두고선 해석이 다양하게 나온다. 우선 다주택자 규제 여파로 세금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똘똘한 한 채'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새 고급 아파트는 미국의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지적한 '과시적 소비'로 이어진다.

일각에선 부동산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3040세대의 가치관을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콘크리트 숲에서 태어나고 자란 만큼 최신 설계에다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춘 새 아파트에만 이들이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주거 기준치 자체가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으나 신축 아파트 투자만이 살 길이라고 강조하려던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세상 흐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적어도 뒤처지진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달은 초로(初老)의 어리석은 고백이다. 아뿔싸!

필부필부(匹夫匹婦)가 트렌드를 이끌기는 무척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면 남들 따라갈 정도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민 눈높이가 달라졌음을 모르는 척 허구한 날 정쟁(政爭)만 일삼는 우리 정치권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변화에는 고통이 수반(隨伴)되기 마련이다. 그래도 떠밀려서 변화와 개혁 대상이 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여태까지 그래 왔다는 이유로 현실에 안주(安住)했다가는 인기 없는 구축 아파트 신세를 면치 못할 게 분명하다.

소설가 한강에 훨씬 앞서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가 남긴 어록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To improve is to change, so to be perfect is to change often."(나아지려면 달라져야 한다. 완벽해지려면 자주 변화해야 한다) 곧 썩어 버릴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다면 오늘부터라도 달라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