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중 가장 더웠던 초가을…기상이변 체감하는 어민들
올해 대구 9월 평균기온 25.4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아
가을 태풍 빈도 최근 증가세… "라니냐 영향" 올해 겨울은 한파 전망도
지난 여름 극심한 폭염에 시달린 뒤 맞이한 초가을 9월에도 전례 없던 늦더위가 계속됐다. 바닷물도 식지 않아 동해의 오징어 어획량은 줄어드는 가운데 제주도에서 잡히던 돔이 점차 늘고 있다. 올해 겨울에는 한파 우려도 나오는 등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식지 않는 바다…포항에서 제주도 '자리돔, 붉바리'까지
지난 9일 오전 10시쯤 찾은 포항 남구 구룡포읍 구평포구. 부두 바닥엔 초록색 통발들이 쌓여 있었다. 등대와 방파제 근처 기다란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의 모습이 띄엄띄엄 보였다.
어업에 종사하며 낚시방을 함께 운영하는 조상옥 구평2리 이장은 "이르면 11월 중순부터 문어를 잡기 시작하는데, 점점 수온이 높아지는 탓에 포획하는 문어 양이 해마다 줄고 있다"며 "전반적으로 고기가 잘 잡히지 않고, 올해는 날도 너무 더우니까 외지에서 낚시꾼도 감소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어 "대신 3년 전부터 문어 통발에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자리돔이 2~5마리 정도 섞여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전남 고흥에서 많이 난다는 '붉바리'도 동네 어민들 사이에서 자주 목격되고 있다. 다들 처음 본 물고기라 이름도 겨우 알아냈다"고 말했다.
대형 오징어선들이 정박한 구룡포에서도 비슷한 하소연이 나왔다. 50년 넘는 세월을 오징어선에서 보낸 이형남(65) 씨는 "오징어가 3~4년 전의 절반도 잡히지 않는다"며 "한 번 바다로 나가는 데 기름값만 200만원이 드는 등 고정비용이 만만찮아 최소 1천 마리 이상은 잡아야 남는 게 있는데, 요즘은 300마리조차 못 잡을 때도 있다"고 토로했다.
바다 온도의 상승은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 특히 동해의 상승세가 가파르다.
지난달 국립수산과학원이 발간한 '기후변화 영향 및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6년간(1968~2023년) 전 지구 표층 수온이 0.7℃ 오르는 동안, 우리나라는 1.44도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해역별로 보면 동해 1.90도, 서해 1.27도, 남해 1.15도씩 상승했다. 동해의 표층 수온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이에 따라 지역의 주요 어종도 급변하고 있다. 특히 동해 주요 한류성 어종인 오징어가 급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북의 오징어 생산량은 2000년대 연평균 7만7천421t에서 2010년대 4만9천64t으로 줄었다. 최근에는 더욱 심각하다. 2020~2022년 사이 연간 오징어 생산량은 2만1천768→1만8천922→9천817t으로 빠르게 감소 중이고, 지난해 생산량은 2천709t에 그쳤다.
반면, 난류성 어종으로 분류되는 돔류 생산량은 서서히 늘고 있다. 경북의 돔류(참돔·자리돔·감성돔·돌돔·기타 돔류 합산)는 2000년대 연평균 35t에서 2010년대엔 48t으로 늘었다. 최근 4년간(2020~2023년) 생산량은 84t에 달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온 상승으로 기존 대표적인 대중성 어종인 살오징어, 멸치 등의 어획량은 감소하거나 정체된 반면, 난류성 어종들의 어획량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우리가 알던 가을 아냐…대구 초가을 9월 평균기온 100년 전보다 5도↑
기상학에선 가을의 시작을 하루 평균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간 뒤 다시 올라가지 않는 첫날로 본다. 실제 9‧10월 중 가을을 가르는 기준인 '평균기온 20도 미만인 날'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가을이 늦게 찾아오는 것이다.
기상청 자료를 바탕으로 대구의 9월 하루 평균기온을 분석했다. 1950년대(1951~1960년) 9월 중 20도 미만 일수는 평균은 13.4일이었다. 이는 1960~2010년대 사이 11.1→9.7→9.6→8.5→7.1→6.7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2020년대에 들어선 더욱 심각하다. 2021년 9월 하루 평균기온이 20도 아래로 떨어진 날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2022년은 7일, 2023년과 올해도 각각 2일에 그쳤다.
경북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포항의 1950년대 9월 20도 미만 일수는 11.6일이었으나, 1980년대(9.6일)부터 두 자릿수가 무너지더니 1990~2010년대 사이 7.7→6.8→4.5일로 가파르게 하락 중이다. 2021년과 지난해, 올해에는 20도 미만이 포항에서 단 하루도 없었다.
아울러 가을의 월 평균 기온 상승세는 뚜렷했다. 올해 대구 9월 평균기온은 25.4도를 기록했는데, 이는 1909년 이후 가장 높았던 지난해(23.5도)보다 1.9도나 상승한 것이다. 올해 9월 평균 최고기온 역시 30.4도를 기록하며, 29.4도였던 1994년을 넘어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가을 기상이변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철 태풍보다 더 강한 '가을 태풍'의 발생 빈도가 늘고 있다. 보통 육지는 7~8월 온도가 가장 높지만, 해수 온도는 바닷물 특성상 9월에 정점을 찍는데,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태풍의 '먹이'인 수증기도 증가해 태풍이 강해지는 것이다.
기상청의 태풍 발생 통계를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2019~2023년) 한해 발생 태풍 중 가을철(9~11월) 비율이 2022년(52.0%), 2020년(56.5%), 2019년(55.2%) 모두 절반을 넘었다. 가을 태풍 비율이 50%를 넘은 건 1951년 이래로 18번뿐인데, 이 중 5분의 1이 최근 5년 안에 발생한 셈이다.
◆강한 여름 다음 '강한 겨울'…올해는 한파 우려도
이례적인 가을 더위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라니냐'를 지목한다. 라니냐는 동태평양과 중앙태평양 바닷물 온도가 낮은 상태로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으로, 라니냐일 땐 우리나라에선 여름 더위가 심하고 오래 가며, 가을은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김해동 계명대 지구환경공학과 교수는 "올해 상반기 엘리뇨(적도 부근 동태평양과 중앙태평양의 바닷물 온도가 높은 상태로 수개월 이상 지속되는 현상)가 끝나고 여름부터 라니냐로 옮겨가면서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오래 유지됨에 따라 더위가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이어 해수 온도 상승에 대해선 "온실가스가 증가해서 지구의 잉여열이 만들어지고, 그 잉여열의 90%가 바다로 흡수되면서 바다에 열이 엄청나게 많아지기 때문"이라며 "바다의 온도가 높아지니 육지까지 더워질 수밖에 없다. 또한, 고수온은 위력이 강한 가을 태풍 발생의 주된 원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다가오는 겨울도 걱정이다. 라니냐 시기엔 시베리아 찬 공기가 동아시아로 강하게 들어오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 폭설과 극심한 한파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구경북기상청의 중장기 예보에 따르면, 오는 12월 지역의 평균기온은 평년(1991~2020년)인 0.5~1.7도보다 낮거나 비슷할 전망이다. 차가운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하락 폭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
안현진 대구경북기상청 기후서비스과 주무관은 "우리나라 겨울철 날씨는 사흘간 춥다가 나흘 동안은 약간 회복돼 따뜻한 '삼한사온'으로 대변되는데, 2022년 겨울엔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추운 날씨가 2주 넘게 지속됐다. 반대로 지난해엔 남풍이 자주 들어와 비가 많이 오고, 비교적 따뜻한 겨울 날씨를 보이는 등 근래 겨울철 기온 변동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는 12월부터 찬 대륙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질 때가 있고, 기온은 평년보다 대체로 낮을 것으로 전망돼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와 어린이에게 취약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획탐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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